매일신문

"소방차도, 구급차도 못 옵니다"…13년째 방치된 청송 '어무골'의 절규

반복되는 산불·사고
진정서·예산 확보에도 사업 중단…주민들 "더는 기다릴 수 없다"

7일 오전 10시 경북 청송군 진보면 어무골 입구 폭이 성인 남성이 양팔을 벌리면 닿을 정도로 좁았다. 차량이 겨우 한 대 지나갈 정도였다. 게다가 며칠 전 내린 비 탓에 미끄러웠다. 전종훈 기자
7일 오전 10시 경북 청송군 진보면 어무골 입구 폭이 성인 남성이 양팔을 벌리면 닿을 정도로 좁았다. 차량이 겨우 한 대 지나갈 정도였다. 게다가 며칠 전 내린 비 탓에 미끄러웠다. 전종훈 기자

7일 오전 10시쯤 경북 청송군 진보면에서 영덕방향 국도 34번을 타고 달리다 월전삼거리에서 마을 안길로 접어들었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10분 남짓 운전하면 더 이상 진입이 어려운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은 경북 청송군 진보면 시량리의 한 끝자락. 사람들은 이곳을 '어무골'이라 부른다.

어무골 어귀 도로는 며칠 전 내린 비 탓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폭 2m 남짓으로 성인 남성이 양팔을 벌리면 닿을 듯했다.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았다. 게다가 바닥에 물까지 흥건한 탓에 운전이 무척 힘들었다. 거북이걸음으로 운전한 끝에 겨우 마을에 도착했다.

"저기서 차 한 대만 마주쳐도 옴짝달싹 못 합니다."

마을 주민 이태규(75) 씨는 도로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리킨 곳은 깊게 파인 개울 쪽 도로였다.

"장마가 오면 이 길은 무너져 내립니다. 저 아래 개울물 넘쳐서 길이 사라지기도 해요."

도로 한쪽은 50cm 넘게 내려앉았고, 누군가 급히 쌓아놓은 돌무더기가 그 자리를 겨우 지탱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차량이 기울 수 있는 위험한 구조다. 마을 입구부터 10가구, 더 깊숙이 4가구가 더 살고 있지만, 그들에게 이 길은 '삶의 끈이면서 동시에 공포'다.

2013년 봄, 어무골 뒷산에 불이 났다. 연기와 불길이 마을을 뒤덮었지만, 정작 소방차는 오지 못했다. 좁고 미끄러운 도로 탓이었다.

주민 김모(68) 씨는 "산이 다 타는 걸 눈으로 지켜봤다. 소방차도 입구에서 길 탓에 멈춰버렸다"며 "지난달 산불이 났을 때는 집집마다 호스로 바가지로 불이 번지지 못하게 막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비극은 이어졌다. 지난해 6월 60대 주민이 살포기(SS기)를 몰다 도로에서 추락해 숨졌고, 같은 해 또 다른 70대 주민은 복통과 마비 증세로 119에 신고했지만 구급차가 마을에 도착한 건 1시간 30분이 지난 뒤였다.

구급차도 어무골 들어오는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다. 길이 좁아 진입이 어렵고, 도로 상황이 워낙 나빠 자칫 차량이 미끄러지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실제 최근 80대 주민이 급히 병원에 이송해야 했지만, 구급차가 마을 입구를 찾지 못해 늦게 도착했고 끝내 병원에서 숨졌다.

주민들은 참다못해 대통령실, 감사원 등 여러 기관에 수차례 민원을 냈고, 지난해에는 소방도로 확장 사업 예산으로 6천만원이 배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과 경북 북동부권 대형 산불 등으로 사업은 시작도 못하고 중단됐다.

청송군 관계자는 "현재는 산불 피해 이재민 지원 예산이 우선 집행되고 있고, 이후 어무골 도로 문제도 최우선 검토 대상"이라고 밝혔다.

7일 오전 10시 경북 청송군 진보면 어무골로 향하는 길이 잦은 침수로 꺼져있었다. 차량이 앞으로 진행할 때 개울 쪽으로 기울 정도로 도로가 위험했다. 전종훈 기자
7일 오전 10시 경북 청송군 진보면 어무골로 향하는 길이 잦은 침수로 꺼져있었다. 차량이 앞으로 진행할 때 개울 쪽으로 기울 정도로 도로가 위험했다. 전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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