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훈석(가명·66) 씨가 20년 가까이 지내온 집은 상한 음식과 쓰지 않는 가전제품, 사람 키보다 더 높이 쌓인 상자로 가득하다. 그가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방 안에는 온전치 않은 기억을 보완하기 위한 메모가 벽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들어가 일을 시작한 훈석 씨는 평생 가족 부양을 위해 살아왔다. 하지만 예순이 넘은 그에게 남은 것은 관리비가 밀려 퇴거 요청을 받은 임대주택과 부채, 그리고 뇌경색으로 인한 후유장애뿐이다. 관계가 소원해진 아이들과는 연락이 끊겼고, 더는 연락 오는 지인도 없는 상황. 훈석 씨는 매일 멍하니 TV를 틀어둔 채 후회에 잠겼다.
◆어린 나이 공장 들어가 가족 부양…자식 뒷바라지 못 해준 한
훈석 씨의 기억 속 아버지는 누운 자리에서 꼼짝 못 하는 병약한 분이셨다. 어머니는 항상 그런 아버지 곁에서 병간호를 하셨다. 그 탓에 훈석 씨네에는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가족들은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훈석 씨는 중학교에 다닐 나이가 될 때까지 흰 쌀밥은 구경도 하지 못하고 컸다. 훈석 씨의 아버지가 마흔도 채 되기 전 세상을 떠난 이후, 어머니는 자식 넷을 부양하기 위해 동네에서 식당 일을 시작하셨다. 여전히 가족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훈석 씨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들어가 돈을 벌게 됐다.
훈석 씨가 들어간 공장은 쇠붙이를 연마하는 곳이었다. 월급이 많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가 식당 일로 번 돈과 합치면 그럭저럭 가족들이 생활할 정도는 됐다. 그 덕에 남동생은 반듯한 공무원이 됐고 여동생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훈석 씨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공장에서 일했고, 친구 소개로 만난 여자친구와 아이를 가져 이십 대 중반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평탄하지 못했다. 배우자가 수시로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햇수로는 2년을 같이 살며 아이 둘을 낳았지만, 훈석 씨는 실제로 배우자와 함께 시간을 보낸 건 두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훈석 씨는 애타는 마음으로 처가까지 몇 번이고 찾아갔지만, 끝내 아내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배우자가 집에 돌아오지 않은 지 1년이 되던 해, 훈석 씨는 가정법원에 홀로 찾아가 이혼했다. 그 과정에서 장인어른이 돌아가셨고, 훈석 씨는 배우자를 대신해 장인상을 치르기도 했다.
훈석 씨는 공장이 외곽지로 이전하기 전까지 아이들을 어머니께 맡기고 공장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그러다 30대 때, 20년 넘게 일한 공장에서 나와 일당을 더 많이 주는 이삿짐센터 일을 시작했다. 일이 손에 익은 뒤로는 친구와 함께 사업장을 차렸고, 그곳에서 먹고 자고 일하느라 아이들 얼굴은 자주 볼 일이 없었다. 주변에서 종종 재혼 이야기도 꺼냈으나, 훈석 씨는 자신의 형편에 새로 가정을 꾸리는 건 상대에게 못 할 짓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도 그럴 것이, 훈석 씨는 자식 등록금 내줄 돈도 마련하기 힘들었다. 훈석 씨 자신이 초등학교만 나온 만큼 꼭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주고 싶었으나, 바람과 현실은 천지 차이였다. 결국 첫째는 대학을 중퇴했다. 아이들이 서울로 거처를 옮긴 뒤 훈석 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임대아파트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홀로 지내며 근근이 살다 뇌경색…거동 어려운 채 생활고 시달려
20여 년 전 어머니가 중풍으로 돌아가신 이후, 훈석 씨는 18년째 홀로 임대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다. 아이들과는 관계가 소원해져 명절이나 생일 때 안부 문자를 보내도 답장조차 받지 못한다.
간간이 들어오는 일감을 쳐낼 때는 외로움을 상기하지 않을 수 있어 좋았지만, 그것도 다 옛일이었다. 훈석 씨는 지난해 초 일을 끝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돼 병원으로 향했다. 진단명은 뇌경색이었다.
오래 입원하며 안정을 취해야 했지만, 입원 한 달 차에 훈석 씨는 불어나는 병원비가 겁나 퇴원 절차를 밟았다. 200만원 넘는 병원비는 아이에게 손을 벌렸고, 이후 사이가 나빠져 연락이 끊어졌다. 훈석 씨는 퇴원 후에도 주기적으로 진료와 약 처방을 받아야 했는데, 의료급여 대상자가 아니어서 매달 의료비가 50만원은 나왔다. 생계 및 주거급여, 연금을 합친 수입원의 절반이 넘는 돈이다. 의료비와 주거비를 내고 나면 식비가 모자라 훈석 씨는 한 끼 겨우 먹는 제대로 된 식사를 맨밥과 김치로 때우고 있다.
훈석 씨는 뇌경색 탓인지 기억이 자꾸 사라진다며 방 안에 온통 자신의 생일, 매달 입금해야 할 돈 따위를 써둔 메모를 붙인 채 생활하고 있다. 방 밖은 이삿짐 일을 하며 가져온 상자와 가전제품 더미로 가득하다. 메모를 붙여도 한계는 있었는데, 아파트 관리비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훈석 씨는 600만원 이상의 체납금이 생겼다. 오는 7월 집 재계약 이전 그 금액을 내야 이곳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으나, 밥도 제대로 못 챙기는 형편에 그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외에도 훈석 씨는 매달 갚아야 할 부채와 의료보험 일부가 밀려 있었다.
현재 훈석 씨는 거동이 어려워 매일 의무적으로 아파트 한 바퀴를 산책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좁은 방 안에 누워서 TV를 보며 생활하고 있다. 건강할 때는 한 바퀴를 도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는데, 이젠 지팡이를 짚고 두 시간은 걸어야 했다. 훈석 씨는 몸이 불편해진 이후로는 만날 사람도 없고 연락 오는 사람도 없다며, "TV가 최고의 친구"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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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의지할 곳 없는 간경화 환자 엄용현 씨에 2,064만원 전달
쪽방서 홀로 간경화 투병하는 엄용현 씨(매일신문 4월 29일 12면 보도)에게 2천64만6천877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흥국 5만원 ▷전우식 5만원 ▷정인섭 3만원 ▷신종욱 2만원 ▷안현준 2만원 ▷이장윤 2천원 ▷'행복' 3만원 ▷'석가탄신일등명불' 1만원 ▷'석가탄신일성각' 1만원 ▷'돕자' 5천원 ▷'모두건강행복재물' 5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이 걱정 뿐인 이다해 씨에 2,125만원 성금
아픈 몸과 마음으로 초등학생 딸을 혼자 돌보는 이다해 씨(매일신문 5월 6일 10면 보도)에게 36개 단체, 114명의 독자가 2천125만4천208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엘㈜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태원전기 100만원 ▷㈜일지테크 10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장현식)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삼성기공(장태종) 3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삼이시스템 20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대흥분쇄기(한미숙) 20만원 ▷㈜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 10만원 ▷법무사 김태원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 10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10만원 ▷유성에스에이치(이석현)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리치푸드시스템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선진건설㈜(류시장)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영신철물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도경희 200만원 ▷김상태 100만원 ▷유주영 40만원 ▷김재균 박전호 이신덕 각 30만원 ▷박철기 20만원 ▷곽용 김성현 김윤정 육은숙 이명진 조득환 최창규 허금주 황우원 각 10만원 ▷김미희 김영수 도강해 박옥선 박정희 백미화 서준교 안대용 유명희 이종하 임채숙 전우식 정수영 최한태 최훈심 하경석 하혜련 각 5만원 ▷강용창 곽병완 박소영 박지현 신광련 이석우 이재민 이재열 이현목 이희숙 전하영 한명환 각 3만원 ▷이영수 2만5천원 ▷권오영 권유진 김철진 김태천 류휘열 박태경 박현주 배영철 안현준 이윤정 이재숙 이해수 각 2만원 ▷문민성 1만9천500원 ▷최은서 최정원 각 1만5천원 ▷강명은 김다영 김성진 김인식 김주현 남장호 박인배 박태용 박태훈 배상영 백진규 변희광 우철규 유귀녀 이영수 이운대 이유록 전선수 정서원 정영민 조영식 최경철 황성광 각 1만원 ▷김진혹 5천원 ▷김건율 2천원 ▷최연준 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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