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A가 고민이 있다며 찾아왔다. 반 친구 중 일부가 숙제를 보여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본인은 보여주기 싫지만 안 보여주면 계속 치사하다고 말한단다. 내가 다시 물었다.
◆너는 네 친구와는 다른 사람이야
"보여 달라고 하는 친구들이 너를 힘들게 하는 거야, 아니면 안 보여주면 불편한 네 마음이 너를 힘들게 하는 거야?"
A는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애들한테 안 좋게 보일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 너를 힘들게 하는 것 아닐까?"
"알 것 같아요, 이제. 제가 힘든 이유…."
"노력도 안 하고 숙제만 베껴서 편하게 제출하려고 하는 애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안 보여주면 돼. 그런데 애들이 치사하다고 하면 애들에게 말해. 치사하다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데 나는 힘들게 한 숙제라서 어쩔 수 없다고."
A는 끄덕였다. 사실 A 옆에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친구 B가 있었다. B는 성적은 A보다는 좋지 않지만 아이들에게 평판이 좋았다. 모든 아이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친구들의 다양한 요구에 수용적인 편이었기 때문이다. A가 혹시나 B를 의식해서 자신도 모두에게 친절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어. 너는 너만의 방식으로 네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면 돼. 네가 너에게 맞지 않는 방식을 지속하면 점점 더 힘들어질 거야. 너는 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이니까."
◆너에게도 빛나는 보석이 있어
교과 내용 학습이 잘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온라인 퀴즈를 진행한 적이 있다. 팀별 퀴즈 대항전이었는데 아이들이 J와는 같은 편이 되면 안 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마도 J의 성적이 좋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J가 조용히 고개를 젓는 것을 보며 침묵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J에게 함부로 얘기하는 친구들에게 뭐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런데 네가 더 불편해할까 봐 참았다고 말했다. J가 말했다.
"성적 안 좋은 제가 그런 소리 듣는 건 당연하죠, 뭐."
나는 절대로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성적 자체가 너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J는 다시 한번 친구들에게 뭐라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다음에 그런 일이 있으면 주의를 주겠다 하고 J를 돌려보냈다. 하지만 J의 뒷모습을 보는 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체육대회 날이 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반 티셔츠를 맞춰 입고 신이 났다. 문득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중학교 시절 왜 체육대회 같은 걸 할까 생각했었다. 평소 체육도 좋아하지 않았고 왁자지껄 응원하는 것도 싫었기 때문이다.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함성이 들려왔다. 세상에, J 그 아이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달리기를 할 때도, 즉흥 댄스를 출 때도 그 아이는 그 누구보다 빛났다. 저런 아이를 교실에 잡아두고 '성적'이라는 잣대 하나로 모두 알겠다는 듯 대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니. 반 아이들 모두 그날 이후로 J를 다시 보게 됐다. 이제는 안다. 체육대회를 포함하여 그 어떤 행사라도 아이들 하나하나 안에 들어 있는 보석을 발견할 기회라면 뭐든지 해야 한다는 것을.
"선생님, 감사해요."
종례 시간, A가 조심스레 다가오더니 속삭이듯 말하며 편지를 주었다. 편지에는 이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방향이 보인다고 적혀 있었다.
3월 초, 첫 수업 때는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안 된다. 키와 피부색이 비슷하고 똑같이 안경까지 쓰고 있으면 더 구별이 힘들다. 그러다가 서서히 누가 누군지 알게 된다. 신기한 것은 하나하나의 개성을 최선을 다해 발견해보겠다 마음 먹으면 더 빠른 시간 안에 구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저 애는 조별 활동 때 항상 옆 친구를 챙기네, 저 애는 유난히 목소리가 크네. 저 애는 급식 시간만을 기다리며 식단표에 형광펜을 긋네, 저 애는 ㅎ을 ㄹ처럼 쓰네.' 하는 식이다.
우리는 가끔 모든 아이가 다 다르다는 것을 쉽게 잊는지도 모른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착각할 때도 적지 않다. 그래서 사회가 정해 놓은 틀 안으로 아이를 마구 욱여넣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도.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잘하는 것을 반짝반짝 빛내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교실전달자(중학교 교사, 조운목 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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