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사유변] 하늘의 그물은 엉성해 보여도…

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대경영상의학과의원 원장)
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대경영상의학과의원 원장)

예나 지금이나 잘 만들어진 선전과 선동은 공적 담론 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 선동가는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대중이 생각하고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 '부정직'하고 '비이성적'인 말들을 교묘히 포장하여 퍼뜨린다. 그리고 어이없게 이성적 사고가 지배하는 21세기에서도 선전과 선동은 여전히 통한다.

나폴레옹도 무솔리니나 히틀러도 선전과 선동을 통해 국민을 기만하며 독재 권력을 휘둘렀지만, 결과는 항상 좋지 않았다. 2024년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다. 전 정권은 무지, 불통, 무대책으로 의대 증원 정책을 밀어붙여 세계 최고의 의료시스템을 망가뜨리더니, 뜬금없는 한밤중의 계엄령으로 종말을 맞이했다.

2024년의 의대증원 사태를 되짚어 전 정권은 어떻게 국민을 속여 넘겼는지, 의사들이 밝힌 진실은 왜 외면당했는지 살펴보자.

우선 전 정권은 의사 증원을 정당화하기 위해 의사 부족을 '창조'해냈다. 이를 위해 '국민 1인당 의사 숫자 OECD 최하위권'이라는 통계를 내세웠다. 한국 의사의 진료 횟수가 OECD 평균의 3.4배로 압도적인 1위라는 불리한 통계는 숨기고, 의사 숫자 부족만을 선전했다. 한국 의사가 외국 의사보다 더 열심히 일하여 진료 횟수가 훨씬 많고 결과적으로 의사 수가 더 많은 셈이 되는데, 전체 통계 중 유리한 부분만 빼내어 선전하고 불리한 부분은 숨긴 것이다.

의사 부족을 만들어 낸 다음 순서는,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에게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된 이기적인 전문가 집단'이라는 악마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국민 건강을 위해 의사 숫자를 늘리려는 '선한 정부'와 기득권 지키기에 올인하는 '나쁜 의사'의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매일 막대한 예산을 들여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국민 1인당 의사 숫자 OECD 최하위권', '나쁜 의사'를 반복하고 반복했다. 보건복지부 관료와 어용학자들의 곡학아세가 방송, 신문, 인터넷 등 가용한 모든 매체를 통해 세상을 가득 채웠다. 덕분에 한때 80%가 넘는 의대 증원 찬성 여론이 나오기도 하였으며, 의사들이 말하는 진실의 목소리는 파묻혀서 들리지도 않았다.

이에 맞서는 의료계는 진실을 밝히면 국민이 믿어 줄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으로 정확한 과학적 데이터 제시에 집중했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쉽고 간결한 선전 선동과 이해가 어려운 진실의 대결은 결과가 뻔했다. 이과적 사고에 익숙한 의료계는 국민을 이해시키는 방법론에서 낙제점이었다.

의사가 부족하다? 당일 전문의 진료가 가능한 세계 최고의 의료 접근성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의사 부족 타령은 수긍할 수 없는 어불성설이다. 의사가 부족해 지방 의료 공백이 생겼다? 인구 감소로 지방 소도시의 인구가 급감하여 자연스럽게 병·의원이 줄어든 것이다. 환자가 없는데 적자를 감내하며 병의원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의사가 부족하여 필수 의료 전문의가 부족하다? 업무는 과다하고 보상은 적으며 법적 처벌이 빈번하니 필수 의료 전공을 기피하는 것이다. 의사가 부족해서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처우가 열악해서 안 하는 것이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하늘의 그물은 넓디넓게 펼쳐져 성긴 듯 보이지만, 그 무엇도 놓치는 일이 없다(天網恢恢, 疎而不失).'이라 했다. 거짓으로 잠시 득세할 수 있겠으나, 하늘의 그물을 빠져 나갈 수 없으며 결국 진실은 밝혀진다. 시간이 걸릴 뿐 선전과 선동은 진실을 넘어서지 못한다.

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대경영상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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