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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55세 늦깎이로 PBA 깜짝 우승한 이승진 "이젠 부담감 없이 당구 즐길 것 같아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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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적울 둔 첫 우승자, 역대 국내 우승자 중 최고령 등 이색 기록 남겨
'대구 최고 실력' 전국적으로 명성…PBA 참여 후 7년간 뚜렷한 성적 없어

이승진 선수가 대구 수성구의 한 당구장에서 연습하고 있다. 전창훈 기자
이승진 선수가 대구 수성구의 한 당구장에서 연습하고 있다. 전창훈 기자

10일 대구 수성구 모 당구장에서 만난 이승진(55) 선수는 "며칠새 전국에서 축하 전화나 메세지가 쇄도했다"며 여전히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8일 열린 시즌 4차 PBA 대회 결승에서 강호 최성원 선수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의 이번 우승은 다양한 기록도 남겼다.

대구 출신으로 지역에 적을 두고 우승한 첫번째 주인공이 됐다. 또한 PBA 7년 역사에서 국내 우승자 중 가장 나이가 많다는 기록도 만들어냈다. 개인적으로는 PBA 도전 이후 참가한 48번째 대회 만에 정상에 서는 감격도 누렸다.

"55세의 늦깎이 '언더독의 신화'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전국에서 저처럼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이 저의 우승으로 새삼 자극이 됐다며 격려를 많이 해줬어요."

그는 이번 대회에 임하기 전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보통 첫 경기가 가장 힘든데, 첫 경기만이라도 이겼으면 좋겠다고 싶었다. 하지만 잇따라 이기며 32강전에 접어들었을 때 상대 선수가 부담스러워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때부터 자신감이 생겼다.

"운 좋게 결승전에 진출했을 때도 상대가 최성원 선수라 이긴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는 세계선수권도 우승한 경험이 있는 등 국내 최강자 중 한 명이예요. 단지 마지막 경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결승에서 세트스코어 3대 0으로 이기고 있을 때부터 평생 한 번 올까말까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에 욕심이 생겼어요."

그는 이번에 우승 상금으로 1억원을 받는다. 7년간 받은 총상금이 5천400만원에 불과한 그에겐 지금까지의 설움을 단숨에 씻을 수 있는 거액이다. "와이프에게 모두 줄 생각이예요. 내년 봄쯤 아파트를 옮겨야 하는데, 그 때 보태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선수는 고교 2학년 때 우연히 친구를 따라 당구장에 갔다가 큐대를 잡기 시작했다. "당구 치는 모습을 보면서 '진짜 재미있겠구나' 싶었다. 첫 눈에 반했다고 할까요. 이후 매일 당구장에 살다시피하면서 당구를 즐겼죠." 당구가 정말 좋지만 생계는 이어가야 하니까, 당구장에서 아르바이트나 매니저 일을 하는가 하면 당구장도 몇 차례 운영을 헀다. 당구에 푹 빠지다보니 40살에 '늦깎이 결혼'을 했다.

그 사이 그는 대구에서는 물론,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났다. 특히 2000년 엘리트 선수로 등록한 뒤 전국대회에서 잇따라 우승하면서 '대구 최고 고수'라는 명성을 얻었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때 당구가 정식종목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대구당구연맹에 등록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당구 선수로의 길을 시작한 것. 그렇게 엘리트선수로 20년간 활동했다.

2019년 프로당구협회(PBA)가 출범하자 그는 원년 멤버가 됐다. 뭔가 새로운 걸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엘리트 때와는 차이가 컸다. "프로는 정기적으로 강등 시스템이 있으니까 그 속에서 치열한 경쟁이 항상 있어요.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엄청 심해요. 엘리트 때와는 달리 기대했던 것만큼 성적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큐 스쿨'(1·2부 리그 선수들 간의 시합을 겨뤄 잔류 및 강등하는 제도)에도 세차례나 갔다 왔죠. 2023년 마지막 대회에서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한 뒤 성적이 안정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는 성적 향상의 원동력 중 하나로 '기업의 후원'을 꼽았다. 현재 그는 대구 업체 3곳으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프로에서 팀 소속의 선수들이 우승하는 게 일반적이죠. 경제적 지원과 체계적인 시스템 등을 고려했을 때 개인 선수와는 비교가 안 되죠. 그나마 저같은 경우는 지역에 후원하는 업체들이 있어 큰 도움이 돼요. 그럼에도 당구와 생계 사이에서 늘 고민하고 갈등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이 선수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도 빼놓지 않았다. "와이프의 내조가 큰 힘이 되고 있죠. 항상 믿어주고 '돈은 없어도 된다. 가끔씩 소주 한 잔 마실 정도로 살아도 괜찮다'고 격려를 해줘요."

그는 지역에서의 '당구의 부흥'을 바랐다. "대구에 엘리트 선수가 40명 정도, 동호인이 10만 명 가량 있는 데다 잠재력을 갖춘 인재들이 많아요. 이런 환경 속에서 대구 기업들이 더욱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당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분이 계시다면 주변 당구장에 가보세요. 과거의 좋지 않은 당구 이미지를 완전히 떨쳤고 온전한 스포츠로 거듭났어요."

이 선수는 앞으로 한층 여유를 갖고 당구를 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는 "우승 한 번 해봤으니까 이제는 부담감을 떨치고 편하게 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8일 열린 프로당구(PBA) 4차 대회
8일 열린 프로당구(PBA) 4차 대회 'SY 베리테옴므 PBA 챔피언십' 남자부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승진. 프로당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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