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미영의 예술기행] 미국 시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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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시내 전경,오른쪽 뒷편으로 눈덮인 레이니어 산이 보인다.
시애틀 시내 전경,오른쪽 뒷편으로 눈덮인 레이니어 산이 보인다.

◆이 땅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다. 우리가 이 땅의 일부일 뿐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팔 수 있다는 말인가. …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형제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들은 우리 형제들이다. 바위산, 풀잎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 가족이다. … 그대들의 제안을 잘 고려해 보겠지만, 이 땅은 거룩한 것이기에 쉬운 일은 아니다.

만약 우리가 이 땅을 팔더라도 거룩한 것이라는 걸 기억해 달라. … 초원에서 썩어가고 있는 수많은 버팔로를 본 일이 있는데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내버려 둔 것들이었다. 연기를 뿜어대는 철마가 우리가 오직 생존을 위해서 죽이는 들소보다 어째서 더 중요한지를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신은 하나라는 것을. 백인들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 '

시애틀 인디언 추장
시애틀 인디언 추장

1990년대 우리나라 중학교 환경 교과서에 실린 두와미시족과 수쿼미시족 대추장 시애틀의 연설 일부이다. 북서태평양 연안 제3의 도시 시애틀의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대추장과 그들 부족은 이 연설 후 1855년 미국 정부와 포인트 엘리엇 조약을 체결하고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이주했다.

10년 후에는 '정착민에게 고용되거나 고용주 바로 옆에 거주하지 않는 한 모든 원주민의 시애틀시 내 거주를 금지'하는 시애틀 타운 조례 제5호가 통과됨에 따라 도시를 떠나야 했다. 1년 후 시애틀 추장은 심한 열병으로 사망했다. 해마다 수콰미시 그의 무덤에서 보이스카우트들이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시애틀의 랜드마크인 스페이스 니들
시애틀의 랜드마크인 스페이스 니들

◆기술과 인문이 공존하는 도시

시애틀 공기는 비행기 아래 내려다 본 태평양과 드넓은 땅덩어리답게 서늘했다. 긴 비행시간 대부분 최근 다시 듣기 시작한 헤비 메탈 샤우팅과 서늘한 뱀파이어 영화 '트와일라잇'을 본 탓도 있을 것이다.

1896년 캐나다 유콘 준주의 클론다이크 강에서 시작된 마지막 황금의 땅을 향한 골드러시는 앞선 캘리포니아나와 호주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혹독하고 극적이었다. 하지만 기차 암표가 횡행할 정도로 그곳을 향한 마지막 관문도시였던 시애틀은 흥청거렸다. 항구에 도착한 황금을 실은 배의 소문이 세계에 퍼져 당시 경제공황에 절망한 십만여 명을 몰아넣었던 것이다.

그 3년 남짓의 짧은 시간에 펼쳐진 '죽음의 길' 칠쿠트 패스(Chilkoot Pass)를 넘다가 얼어 죽거나 병사한 수만 명의 비극이 펼쳐졌다.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혹독한 추위, 험준한 산맥이 이어진 툰드라 지대에서 실제 금을 찾은 이들은 극소수이며 대부분은 그 혹독한 자연환경과 싸우다 빈 손으로 돌아갔다.

불행한 그들의 상징처럼 버스 차장 밖으로 당시의 금 보관소였다는 붉은 벽돌로 탄탄하게 지은 클론다이크 박물관이 스쳐 지나간다. 이 짧고도 강렬했던 골드 러시는 잘 찢어지지 않는 작업복 수요로 청바지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둥근 유리 돔으로 웅장한 시애틀의 아마존 본사
둥근 유리 돔으로 웅장한 시애틀의 아마존 본사

도시는 시간의 가장 완전한 그릇으로 인간의 꿈, 제도, 기억 그리고 파괴의 흔적까지 모두 담겨져 있다는 루이스 멈퍼드의 말대로, 시애틀은 짧은 미국의 역사 중에서도 북서태평양에 연안한 모든 것을 담은 도시다.

아메리카인디언의 삶과 추방, 골드 러시, 동아시아 이민자 유입, 제2차세계대전, 추축국 일본인 추방, 1970년대 오일 쇼크, 제조업의 쇠퇴로 인한 도시의 몰락 등, 개인적으론 이러한 역사의 축적이 시애틀을 아주 독특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것을 둥근 유리 돔으로 웅장한 아마존 본사(The Spheres)와 마이크로소프트, 보잉, 닌텐도아메리카, 스타벅스 같은 기업과 기업주들에게서 느낀다.

시애틀의 위성도시 메디나가 고향인 빌 게이츠와 시애틀에서 아마존닷컴을 창업한 제프 베이조스 등의 면면이 북서태평양과 알래스카의 역사와 흔적에 각인되고 매료되었으리란 생각이 든 때문이다. 그들의 창업과 기업 이전의 내력은 차지하고서라도 시애틀에 펼친 그들의 깊은 애정에 바탕한 헌신적인 비전과 철학이 도시 곳곳에 스며든 것을 본 때문이다. 쇠락해가던 도시를 세계 IT산업의 요람으로 변화시키고, 재단을 만들어 미술관, 심포니, 공공도서관을 설립하고 노숙자들과 아동에 대한 교육기관을 세우는 것이 참으로 부러워서다.

파이크 플레이스에는 있는 스타벅스 1호점.
파이크 플레이스에는 있는 스타벅스 1호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그리고 헤비 메탈

시애틀에선 내내 비가 내렸다. 레인 코트를 여행에서 그렇게 자주 입어 본 것도 처음이었다. 가을부터 겨울을 거쳐 봄까지 시애틀에서는 허구한 날 비가 오고 안개가 낀다고. 어둡고 음울한 이런 날씨 때문인지 눈길 닿는 거의 모든 길모퉁이마다 커피 하우스가 있었다. 운 좋게 싱싱한 생선들을 가판대에서 던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던 시애틀의 유명한 재래시장 파이크 플레이스에 그 유명한 스타벅스 1호점이 있었다.

세 번 바뀌었다는 현재의 녹색이 아닌 갈색 인어 로고가 유리창에 커다랗게 새겨진 커피점은 전 세계 관광객들 나래비가 옆 골목까지 이어져 있다. 게다가 내부엔 의자가 아예 없고 테이크 아웃만 된단다. 아, 대구의 고택 스타벅스 커피가 너무 그리웠다. '선장님, 저 고래는 우리의 돈도 아니고 고기도 아닙니다.' 모비 딕의 1등 항해사 스타벅은 이렇게 말했지. 이 커피의 광기 속에서 균형을 잡으려면 카페인이 필요해라는 우스운 생각을 하며 거리를 벗어났다.

스타벅스 최초 앰블럼.현재의 녹색이 아닌 갈색 인어 로고
스타벅스 최초 앰블럼.현재의 녹색이 아닌 갈색 인어 로고

시애틀에는 우리나라에선 가장 가까운 미국 본토 도시라서 그런지 우리 교민들이 많았다. 거대한 풋볼과 야구 경기장 그리고 100여 년 되었을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들 주변의 숲과 언덕, 강, 호수들. 그래서인지 보트와 카누들이 즐비하고 수상비행기도 자주 눈에 띈다. 웬만한 강에선 죄다 연어가 잡히는데, 상당히 잘 잡히는 편이라 연어잡이만으로 먹고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시애틀 공항 출국장은 놀랍게도 우리 대구공항만 했다. 좁은 출국장에 촘촘히 줄을 선 비행기 탑승객들 사이에서 아기가 떼를 쓰며 울고 엄마가 진땀을 흘리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보다 맞은편 벽면에 전시된 락 밴드 펄 잼을 발견했다. 아, 여기가 전설의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와 밴드 너바나 리드싱어 커트 코베인의 고향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Star-Spangled Banner', 'Purple Haze', 'Foxy Lady' 'Voodoo Chile/Child'을 여름 내내 들으면서 그를 왜 시애틀과 연결 시키지 못했을까.

시애틀 태생 락밴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시애틀 태생 락밴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울부짖고 기타를 물어뜯던 그의 연주를 유튜브로 들으며 성능 좋은 해드폰을 하나 살까 망설이기도 했었는데… 그러다가 문득 하이렘 운하에서 옆구리를 물어뜯긴 채 물살을 거슬러 오르던 연어를 떠올린다. 일설에 의하면 27세에 죽을 때까지 메니저들에게 착취당하며 연주를 다녔다는 그의 이력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 1990년대 락계를 풍미하던 커트 코베인의 죽음도 만만찮다. 존경하는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와 그의 생애 그대로 그 또한 젊디젊은 27세에 사망했다. 갑자기 시애틀로 다시 유턴하고 싶은 심정을 꾹 누르고 인천행 비행기를 탔다. 아아, 시애틀…

박미영 시인, 대구문학관 기획실장
박미영 시인, 대구문학관 기획실장

박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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