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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석민] 우리 시대의 벌거벗은 임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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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민 선임논설위원
석민 선임논설위원

임금은 절대 권력자(權力者)로서 나라의 주인이다. 법 위에 선 존재이며 모든 법은 그를 위해 만들어지고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인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경우가 생겨난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은 이런 현상을 풍자(諷刺)하고 있다.

때론 동화가 현실이 된다. 검찰은 지난 7일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의 항소(抗訴)를 포기했다. 초대형 개발 비리 사건에서 주범들의 주요 혐의가 일부 무죄가 났는데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법무부가 관여하고 대검 수뇌부가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결정으로 7천800여억원에 달하는 부당 이익을 환수할 기회가 사라졌고, 비리 주범(主犯)인 김만배·남욱 등은 각각 5천700억원, 1천억원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또 처벌이 무거운 특경법상 배임이 아닌 업무상 배임으로 사실상 확정됐다. 무엇보다 대장동 개발 비리의 핵심 인물인 당시 '성남시 수뇌부'가 발 뻗고 잘 수 있게 되었다.

임금님의 무치(無恥) 퍼레이드는 이어진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의해 '한국판 미친 잭 스미스'로 불린 조은석 내란 특검이 요청한 수사 기간 연장(30일)을 용산에서 승인했다. 이번이 세 번째다. 김건희 여사·해병대원 특검도 이미 연장 중이거나 추가 연장을 할 예정이다. 무고한 공무원이 억울하게 죽어 나가도, 특검이란 자(者)가 불법 주식투자 의혹이 있어도, 수사 과정에서 인권유린·종교탄압 논란이 벌어져도 특검 수사는 계속된다. 수사는 결과에 관계없이 내란은 반드시 있었어야 한다는 것인가?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위원회'에 비견되는 장면이 '내란(內亂) 청산'이란 이름으로 군부와 행정부 등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대부분의 군인과 공무원들이 겨우 수 시간짜리 깜짝 계엄으로 당혹스러워하다가 끝났을 터인데, 무슨 책임을 묻겠다는 것인지 황당하다. 있지도 않은 내란을 빌미 삼아 국가 조직을 사유화(私有化)하겠다는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적나라(赤裸裸)한 임금님의 행진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거짓의 옷이 한 꺼풀씩 벗겨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미 관세 협상이 대표적이다. 7월 말 '한미 관세 협상 합의' 소식이 언론에 대서특필되었고, 8월 한미 정상회담 때엔 "합의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된 회담"이라는 대통령실 대변인의 설명이 있었지만, 그 합의 내용을 아는 국민은 없었다. 그리고 또다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때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을 발표했다. 역시 깜깜무소식 함흥차사(咸興差使)는 계속된다.

10·15 부동산 대책은 '서민과 청년의 내 집 마련 꿈을 빼앗는다'는 비판에 이어 통계 조작(造作) 논란까지 터졌다. 최신 주택 통계를 전달받고도 이전 자료로 규제 지역을 심의했다는 주장이다. 국토부는 심의 당시 통계 자료가 공포되지 않아 법적으로 활용 근거가 없었다고 해명한다. 그런데 최신 자료를 반영한 주택 정책을 10월 20일에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뭔지 궁금하다.

이제 '코스피 5000'을 내건 주식시장 하나 남았다. 문제는 지난주 외국인이 주간 기준 역대 최대인 7조원어치를 팔아 치웠다는 점이다. 원·달러 환율도 폭등해 1,460원대에 진입했다. 개미들의 바람과 기대·희망만으로는 힘겹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국민이 늘어나더라도 임금님의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 동화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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