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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아침-김태일] 경북 산불, 아직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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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그저께 국회 본관 앞 계단에 경북 다섯 개 시군에서 올라온 산불 재난피해자들이 섰다. 삼베 상복을 입은 이들도 있었다. 절박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겨울비가 지난 뒤 차가운 계단이었지만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은 결연했다. 산불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요구는 분명했다. 산불 특별법 시행령이 피해 현실을 외면하고 있으며, 국회가 국정조사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별법 제정 소식에 국가가 책임지고 삶을 회복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를 했지만, 시행령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회복의 기준은 모호하며 피해주민은 여전히 행정의 시혜 대상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경상북도의 평가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경북도는 역대 최대 복구비 확보와 재창조본부 신설, 산불특별법 제정을 성과로 내세우며 복구를 넘어 재창조 단계에 들어섰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 특별법 시행령의 '포괄성'은 '불확실성'으로, 재창조라는 말은 삶의 붕괴 앞에서 공허하게 들린다. 두 인식 사이의 거리는 좁혀질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재난 회복이 멈춰 선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 첫째, 피해당사자와 협력이 부족했다. 재난은 개별 사정이 복잡해 행정만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그래서 민관협력이 필수라고 재난 교과서는 말한다. 지금 경북 산불 피해자들은 회복과정에서 배제됐다고 느끼고 있다. 기자회견장에서 반복된 말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를 가진 시민이다."

둘째, 신뢰할 수 있는 원인 규명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각종 피해 조사와 연구보고서는 나왔지만, 대형 산불의 원인과 책임을 명확히 밝히는 조사는 여전히 빈칸이다. 피해자들이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회복은 책임 회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기자회견장에서 '국정조사가 행정을 마비시킨다.'라는 돌출 발언이 있어서 고함이 오간 소란이 있었는데, 그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국정조사는 행정을 멈추는 장치가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고 책임을 분명히 해 회복의 출발점을 만드는 과정이다. 신뢰 없는 복구는 또 다른 상처를 남긴다.

대구·경북은 대구지하철 참사, 상인동 가스폭발, 경주·포항 지진, 초대형산불까지 한국 사회의 주요 재난을 모두 겪은 지역이다. 이 재난들도 '회복'이 제대로 이루어진 건 아니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그 재난들이 국가 재난정책과 책임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되어왔다는 사실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통합재난관리체계 강화, 도시 안전 기준 대개혁'으로, 대구 가스폭발사고는 '도시 인프라 안전관리 체계 강화'로, 경주 지진은 '지진 대응·내진 정책 국가 의무 강화'로, 포항 지진은 '국가 책임 인정 확대, 재난 배상 패러다임 전환'으로, 모두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보편적 가치로 만들어갔다. 울진 산불과 경북 산불은 '기후재난 시대 재난정책 재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경북 산불도 그런 보편적 가치 실현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회복의 방식에서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대구‧경북은 '재난이 많은 지역'이라는 오명이 아니라, 한국 재난정책을 진화시킨 시험대, 교과서, 그리고 전환점의 지역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직 꺼지지 않은' 경북 산불 문제는 기후위기 시대에 국가는 재난에 어떻게 대비, 대응해야 하나? 한국 재난정책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에 답을 찾는 분수령이 되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이번 경북 산불재난 회복과정은 우리 지역사회가 함께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 재난피해자와 연대하면서 '안전한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가는 좋은 사례로 만들면 좋겠다. 불길은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경북 산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정확한 원인 규명과 책임 있는 조사, 피해자를 주체로 세우는 회복이 이뤄질 때 비로소 이 산불은 완전히 꺼질 것이다. 경북 북부 고립된 지역에서 추운 겨울을 맞이하는 산불 피해자들이 외롭지 않게 새해를 맞이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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