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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희의 법도 문학도 아닌] 말(馬)을 말(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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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馬)을 말(言)하다

김계희 변호사
김계희 변호사

한때 러시아문학도였던 내게 말(馬)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言)은 '홀스토메르'이다. 동명의 말이 주인공인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삼베를 재는 사람'이라는 뜻의 '홀스토메르'는 보폭이 긴 자유분방한 걸음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좋은 혈통에 화살처럼 곧은 다리와 널찍한 발굽, 반질반질한 궁둥이와 등, 날랜 걸음에 체격과 힘을 모두 갖추었지만, 얼루기라는 이유만으로 그는 불가해한 경멸과 부당한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 예기치 못한 이상한 불행은 거세마라는 불행으로 이어졌고, 살아있는 말인 자신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는 인간으로 인해 그는 삼중으로 불행했다고 말한다.

'나의 말(馬)'이라는 것은 '나의 공기', '나의 물'이라는 단어만큼이나 이상한 것인데, 인간들은 '나의'라는 말을 어떤 특정한 사물에 대해 한 사람만 쓸 수 있게 정해놓고서는, 가장 큰 수의 사물에 대해 '나의'라고 말하는 사람을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소유권'을 말의 시선을 빌어 말하는 '낯설게 하기' 기법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홀스토메르는 '사람들은 삶 속에서 자신들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대한 많은 물건을 자기 것이라고 부르기 위해 애쓴다.'라고 하면서 이 한 가지만으로도 생물의 위계에서 우리가 인간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작품이 완성된 57세 무렵 톨스토이는 사유재산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주된 수입원인 저작권 포기를 선언하고, 재산의 사회환원을 도모하였다. 아내 소피야에 대한 톨스토이식 선전포고(자신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겠다)였다.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한 아무리 선한 의도의 기부행위라 하더라도 혼인생활에 있어서는 유책사유일 수 있다. 지금이라면 소피야는 그런 기부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못에 뛰어드는 등의 자기파괴적 자살 소동을 벌이는 대신 톨스토이를 상대로 당당하게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를 하면 되었을 것이다.

시의(侍醫·궁중 의사)의 딸 소피야는 18세에 34세의 톨스토이와 결혼했다. 타자기도, 복사기도 없던 시절, 제대로 읽기조차 어려울 만큼 방대한 분량의 <전쟁과 평화>를 7번이나 정서(淨書)할 정도로 소피야는 톨스토이의 작품활동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조력자였다. 딸들이 성장하여 대신할 때까지 모든 작품의 원고를 정서하는 일은 오롯이 소피야의 몫이었고, 16번의 임신에서 13명의 아이를 낳아 8명을 성인이 되도록 양육한 것은 물론, 집안 살림까지 전담했으니 아무리 형편없는 변호사가 나서더라도 50%의 재산분할은 넉넉히 인정될 것이다.

수말 '홀스토메르'에 대비되는 너무나 유명한 암말의 이야기는 <안나 카레니나>이다. 브론스키의 경주마 '프루프루'는 그 이름만큼이나 안나(AHHA, 러시아어 알파벳 H는 영어의 N이다)의 데칼코마니이다. 혈통이 좋은 날씬한 미녀 말 '프루프루'는 가장 어려운 장애물도 정확하고 침착하게 넘어서지만, 결승선을 앞두고 브론스키의 잘못으로 등뼈가 부러지고 총살되고 만다.

작품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프루프루'의 비극적 운명은 브론스키와 안나가 처음 만난 기차역에서 기차에 뛰어들었던 남자처럼 다시 기차역에서 이번에는 안나가 자신을 던진다는 플롯만큼이나 톨스토이의 작가로서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문학적 장치로 평가 받는다.

정작 작가 톨스토이가 어떤 작품을 쓰려고 하였는지, 이러한 문학적 장치들을 치밀하고 정교하게 계획하였던 것인지 현재의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알려면 그리기 시작해야 한다."라는 피카소의 말처럼 일단 쓰기 시작한 글이 톨스토이를 어딘가로 이끌고 간 것일지도 모른다.

<안나 카레니나>의 배경이자, 톨스토이와 소피야 부부에게는 현재였던 제정 러시아 시대의 결혼, 불륜, 이혼의 의미를 현재의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이 작품의 첫 문장만큼은 세기의 이혼이라 불리는 최태원, 노소영 부부 사건 상고이유서 첫머리를 장식할 만큼 현재적이다. 법은 판단을 요구하지만, 문학은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이건 어떨까요? 그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용히 물을 뿐이다(아차차, 말(馬)에 대해 말하면서 비소츠키의 야생마를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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