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연극 교류를 대표하고 있는 재일교포 출신의 정의신 극작가 겸 연출가의 첫 작품을 본 것은 1993년 한강 둔치 천막극장에서 공연된 신주쿠양산박, 김수진 연출의 〈인어전설〉에서였다. 당시 한국연극은 프로시니엄 무대의 한계성이 뚜렷했고, 연극 공간은 실내 극장으로 한정되던 때였다. 동춘서커스처럼 천막극장을 지어놓고 대한민국 한강의 물줄기를 연극적으로 활용하는 연출 기법도 충격적이었지만, 연극은 한강 북쪽에서 한나룻배가 남쪽으로 향하면서 시작됐다. 뱃사공이 두 손을 치켜들어 흔들며 "여기, 여기!" 하고 외치자 나룻배가 서서히 물길을 따라 다가 왔고, 천막극장 뒤편이 거대하게 열리며 연극은 시작됐다. 극장 입구는 배우들이 의상을 입은 채 분장을 하는 과정을 날것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했고, 무대에서는 꽹과리와 사물들을 쳐대며 재일교포 삶의 한(恨)을 피를 토해낼 것 같은 에너지는 천여 석의 천막극장을 달구고도 남았다. 재일교포의 삶과 소외, 현실의 경계를 연극적 환상과 몽환적인 분위기로 살려냈고, 텐트와 자연환경을 융합해 무대를 연극적 공간으로 결집시켜 연극적 경계를 허물었다. 허구성과 실재성을 융합한 그로테스크한 연극성을 가미해 강한 인상을 남긴 공연이었다.
그 이후 2000년대까지 한국연극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정의신 연출은 김수진 연출이 이끄는 신주쿠양산박에서 극작가로 활동했다. 신주쿠양산박은 대표 배우 김구미자(여), 주원실(남) 등 재일교포를 중심으로 다양한 멤버들이 모여 1987년 일본 도쿄에서 극단을 결성하면서 김수진(연출), 정의신(극작) 콤비가 시작됐다. 신주쿠는 도쿄의 중심 거리이고, 양산박은 중국 소설 『수호전』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혼탁한 세상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연극을 택한 연극인들의 극단이라는 의미다. 이 작품 이후 정의신은 홀로서기를 하며 작·연출을 병행해 왔고, 〈천년의 고독〉, 〈야끼니꾸 드래곤〉, 〈나에게 불의 전차를〉, 〈노래하는 샤일록〉, 〈푸른 배 이야기〉, 〈20세기 소년소녀 창가 집〉, 〈겨울 선인장〉, 〈가을 반딧불이〉,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 모노드라마 〈맛있는 만두 만드는 법〉 등 화제작들을 연달아 발표했다. 〈천년의 고독〉으로 제17회 테아트르상 수상을 시작으로 제57회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각본상 등 연극과 영화 장르를 넘나들며 수많은 상을 받았다. 특히 2017년 국립극장에서 올려진 브레히트 원작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연출 특유의 연극 문법으로 극의 뼈대를 재구성하고, 판소리로 그 맛을 비벼 우리의 창극으로 섞어내며 전통 창극 문화에 실험적인 입체감을 시도한 작품이다.
일단 해체시키고 창극으로 재구성한 원작을 그만의 방식대로 요리한다. 정의신 특유의 연극적 냄새를 가미하기 위해 발라낸 중요한 이야기의 살점들은 그대로 붙이고 유지하면서도, 구성과 재료들은 정의신 연극 문법 방식대로 배치했다. 인물은 과장되고 정제된 그로테스크함을 드러냈다. 연극적인 외형성에 그만의 웃음 코드를 넣고, 인물의 내면성에는 소리의 정서를, 장면과 인물의 특수성은 희화적으로 그려내면서 장면에 균형성 있게 배치하기도 한다. 판소리 대화체를 감정 표현의 근간으로 하는 창극에 브레히트의 서사극적 요소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장면 배치를 극중극 놀이들로 무장하는 공간적 연출도 탁월했다. 브레히트의 서사극 요소를 유지하면서 인물과 극의 외형에는 우리 마당 문화를 접목시키고, 감정 언어는 현대적으로 창극화시켰다. 인물 내면의 감정들은 판소리 특유의 탁음 상태의 정서가 판소리로 발화됐다. 발화되는 판소리의 감정들은 타악의 박자와 서양 악기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와 섞이며 현대적 멜로디로 융합돼 절묘한 앙상블을 보여주었고, 감정의 정서는 판소리로 뱉어내면서 민중의 고단한 삶의 내면성은 파편화되지 않고 판소리로 침전돼 관객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절묘한 서사극적 드라마 구조에 우리 창극을 융합해 탁월한 조화를 보여주었다.
고백하자면 그 뒤, 나는 정의신 연출의 팬이 되었고 대경대학 연극영화과 전공 학생들에게 졸업 전 그의 작품을 반드시 올려보라고 했다. 한일 수교 60주년에 〈야끼니꾸 드래곤: 용길이네 곱창집〉으로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이던 그를 만났다. 마지막 공연을 마친 뒤 극장 로비로 나온 정의신 연출은 목에 머플러를 하고 있었고, 얼굴색은 붉그레할 정도로 미소년 같은 피부였다. 통역은 정의신 연출과 연극 작업을 함께한 경험이 있는 스즈키 다다시 극단에서 활동한 이수연 배우가 맡았다. "한국말을 다 들을 수 있으니 우리말로 질문하자"고 했지만, 정의신 연출은 일본어가 의미를 체감하는 데 인터뷰가 더 편할 것 같다며 질문을 하면 통역으로 묻는 방식이었다. 인터뷰는 CJ토월극장에 마련된 회의실에서 진행했다.
▶한일 수교 60주년 <용길이의 곱창집>을 다시 하게 된 의미는. "정의신 연출은 질문을 하면 종처럼 길게 말하지 않았다. 필요한 말만 했고, 한국말은 서툴지만 명확했다."
"2011년 이후 오랜만에 이 작품을 하게 된 이유는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이한 올해, 어떤 작품이 의미 있을까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야끼니꾸 드래곤>만큼 적합한 작품이 또 있을까 싶었어요. 이 작품을 사랑해주셨던 관객, 함께했던 동료들이 '다시 한 번 뭉쳐보자'고 힘을 모아줬습니다. 60주년에 뜨거운 마음으로 선택한 작품입니다."
▶정의신 연출 작품들중에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함께 지닌 작품들이 많기도 하고, 대체적으로 작품에 제일 교포의 아픔과 현실이 녹아 있는데... 굳이 <용길이네>인 이유가. " '야끼니꾸 드래곤'은 초연 당시 일본 요미우리연극대상과 한국연극협회 선정 '올해의 우수공연 베스트 7'을 받기도 했다. 2018년에는 '야끼니꾸 드래곤'을 영화로 제작했고, 2023년에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연극으로 각색해 선보이기도 했다.""일본 도쿄의 신국립극장에서도 이 작품을 여러 번 공연했는데, 극장 측에서 항상 <아끼니꾸 드래곤>을 제일 먼저 재공연
해달라고 요청했어요. '언제 또 할 거냐'는 문의가 가장 많았어요 말 그대로 넘버원, 탑 작품입니다. 주변 팬분들의 지지와 응원도 꾸준했고요. 한국에서 다시 올릴 때에는 오리지널 출연진과 스태프들의 나이와 사정들을 함께 고려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는 이 <아끼니꾸 드래곤>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이 다들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절실하게,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꼭 다시 하자'고 의견을 모아 함께 하게 됐습니다."
▶<용길이네 곱창집>을 처음 올렸던 시기와 비교하면, 2025년의 대한민국은 여러 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일 관계나 재일 한국인의 삶을 둘러싼 현실 역시 작품이 탄생했을 때와 지금은 농도와 결이 달라졌죠.
"공연 자체는 달라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 작품을 다시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2025년 관객들이 작품을 받아들이는 방향성은 많이 달라졌다고 느껴요. <용길이네 곱창집>은 1970년대를 살아온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그 시절 오사카에서는 엑스포가 열렸고, 올해도 마침 여름에 같은 도시에서 엑스포가 열리죠. 예전에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1세대의 삶, 그리고 그 후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1세·2세·3세의 생활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지금의 재일 한국인 현실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당시에는 '재일교포'라 불리는 사람들이 뚜렷하게 구분되었지만, 지금은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거나, 조선의 피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일본인으로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재일교포라 불리는 인구 자체가 크게 줄었고요. 누가 한국계인지, 일본 국적인지 서로 밝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이제는 '뉴 커머(newcomer)'라 해서, 한국에서 일본으로 새롭게 이주하거나 유학하며 생활하는 세대가 주축을 이룬 동네들이 생겼습니다. 시오쿠보 역 주변을 비롯해 여러 지역에 그런 변화가 뚜렷하죠. 이런 점들을 보면, 당시와 지금의 제일 한국인, 다시 말해 일본에서 생활하는 한국인의 모습은 아주 많이 달라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도교수로 학생들과 작품을 연습하다 보니 정의신 작품이 굉장히 정교하다는 걸 매번 느낍니다. 한마디의 대사, 그 대사를 위해 필요한 동작과 퍼포먼스들이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더군요. 연출적인 박자같은 음표라 할까요. 그게 제대로 작품에 맞아들어가지 않으면 웃음도 나오지 않고, 아픔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더군요.
"작가로서 이 작품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1970년 오사카에서 엑스포가 처음 개최되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메이저 공항이 된 간사이 공항 이전에 이타미 공항이 있었고, 그 이타미 공항 인근에 살던 재일교포들의 일상다반사를 담아낸 이야기죠. 그런데 지금은 그곳에서 살던 재일조선인들도 거의 없고, 많은 이들이 그곳을 떠났거나 세상을 떠났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함께한 할머니 1세대, 아버지 2세대, 그리고 그 후손들의 삶이 분명히 존재했는데, 그들의 이야기가 희곡으로도 영화로도 요즘에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삶이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썼습니다. 희곡은 결국 남는 기록물이기도 하고, 공연이 계속된다면 공연 기록으로도 남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관객과 미래 세대가 언제라도 이 역사를 만날 수 있도록,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해 쓴 작품입니다."
▶<야끼니꾸 드래곤:용길이네 곱창집>는 연출적으로도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노래를 하거나 사물놀이를 한다고했을 때 즐거워서만은 아니잖아요. 너무 아프니까, 그 아픔을 잊으려고, 혹은 기억하려고 노래하고 사물도 하는 거죠. 극중장면에서 이러한 것을 배치한 지점이 좋다고 느꼈습니다. 어린 시절에 경험하신 장면들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재일교포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것을 장면으로 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제 진짜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간장 공장을 하는 사장님에게서 땅을 사고, 그 위에 집을 세워 가게를 차렸다는 모든 설정이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죠. 그리고 당시 많은 재일 조선인들이 이런저런 가게를 차리고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꾸렸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나의 부락이 형성되었습니다. 저는 그곳 출신이기 때문에, 이 작품의 토대가 된 어린 시절 유년기의 기억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부락이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모두 떠나고, 재개발을 거치며 그곳이 공원으로 변했고, 지금은 세계유산 지구가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농담처럼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세상에 작가는 많지만, 내가 살았던 곳이 세계유
산 지구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작가는 나밖에 없다'고요."
▶<인어 전설>을 기점으로 이전에는 '작가 정의신', 이후에는 '연출가 정의신'으로 불려왔습니다. 저 역시 그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글도 많이 썼고요. 그런데 왜 굳이 자신의 작품을 연출까지...
"특별한 계기나 터닝 포인트가 있어서 연출 데뷔를 한 것은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죠. 처음에는 한국에도 왔던 '검은 텐트(블랙 텐트)'라는 극단에서 <사랑하는 메데아>라는 작품을 작·연출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김수진 연출가가 있는 '신주쿠 양산박'에 들어가서도 작·연출을 하게 되었고, 그 작품이 갑자기 기시다 희곡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노미네이트가 된 뒤로 계속 연출 작업을 이어가게 되었고, 제 연출 인생이 그렇게 열리게 된 것 같습니다."
▶한동안 한국 국립극단(극장)무대에서도 작품을 올리시고 활발히 활동하셨는데, 최근에는 작품이 뜸하셨죠.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마음 편하게 한국에 올 수가 없는, 하늘을 날아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공연을 올릴 수도 없었고, 일본도 마찬가지로 공연 업계가 많이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정의신이 한국에 안 간대. 계속 일본에 있대'라고 하니까, 오히려 일본에서 섭외가 끊이지 않게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정신없이 이 작품 저 작품을 올리다 보니, '언젠가는 한국에 꼭 가야지'라고 마음먹으면서도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드디어 한국에 오게 되었고, 내년 9월에도 한국에서 공연을 할 예정입니다."
▶<야키니쿠 드래곤: 용길이네 곱창집>은 여러 차례 공연되었고,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연습 스타일이 매우 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특히 반복 훈련을 중요하게 여기신다고요. 저도 학생들과 연습할 때 기본적으로 3번, 4번씩 런스루를 반복하곤 합니다. 연출가님께서 그렇게 반복을 강조하시는 특별한 이유는.
"작업을 오래 함께해와서 잘 알겠지만, 특별히 어떤 중요한 이론이 있어서라기보다 제 성격 자체가 그래요. 연습 중에 무엇 하나라도 거슬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속 신경이 쓰이고, 결국 해결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래서 무조건 어떻게든 정확하게 맞출 때까지 반복하게 됩니다."(웃음)
▶"저도 연기 교육을 많이 해왔는데, 여러 메소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반복만큼 중요한 소드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합류한 배우들은 어떤 관점에서 캐스팅하신 것인지.
"이번 공연은 일본에서는 네 번째, 한국에서는 2008년과 2011년에 이어 세 번째 공연입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초연과 재연 당시 출연했던 배우들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어요.
특히 첫째, 둘째, 셋째 딸을 맡았던 배우들이 모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첫째, 둘째 딸을 맡았던 배우들은 현재 연기 활동을 은퇴한 상태예요. 그렇다 보니 아들, 딸 세대 4명은 젊은 배우들로 새롭게 캐스팅해야 했죠. 하지만 한국에서의 마지막 공연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초연 당시 오리지널 캐스트와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영석 배우와 고수희 배우를 모셨습니다."
▶ 고수희 배우를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가.
"고수희 배우는 첫 공연 때는 30대 초반이었지만 지금은 50대에 가까워졌고, 연륜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엄마'의 느낌이 훨씬 강해졌습니다. 연기를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삶이 그대로 배어나오는 힘이 생긴 거죠. 또 테츠오 역할의 치바상도 초대하고 싶었는데, 지금 환갑이 넘은 상태라 본인은 아버지 역할로 오는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내가 무슨 테츠오냐'라며 당황했지만, 다른 선배 배우들도 함께 하니 오히려 젊은 세대와 원년 멤버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재미있는 콜라보가 가능하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이번 캐스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2008년 초연 때보다 작품 전체가 더욱 완숙해졌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고수희 배우의 인생이 보이는 듯했고, 이영석 배우도 70대가 되셨으니까요. 영화도 보고 초연도 봤지만, 오늘 공연은 가슴을 치는 뭉클함이 있었습니다. 이 지점이 연기가 아니라, 삶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순간이라고 느꼈습니다. 무대 위 배우도 살아 있고, 관객도 살아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그런 완숙함이 드러날 수 있었던 이유와 배우들에게 강조하는 디렉션은. 또 반복 인가요? (웃음)
"네, 맞습니다. 반복입니다. 무조건 반복이에요. 웃음 포인트는 특히 그렇습니다. 코미디는 기본적으로 세 번 이상 반복해야 합니다. 기본이 세 번이죠. 배우들은 '이걸 계속해야 하나요?'라며 힘들어하기도 하고, '왜 이렇게까지 반복해야 하죠?'라고 어이없어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결국은 연출을 따라가다 보면, 그 과정 속에서 완성도가 생기고 관객에게 정확하게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연기의 반복'을 말씀하셨는데...이번 배우들에게 특히 강조하신 부분을 구체적으로.
"토키오(아들)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는 '정성스럽게 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습니다. 토키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이끌고, 상황을 아우르며 나레이션을 하는 스토리텔링적 캐릭터이기 때문에 가장 어린 배우임에도 큰 책임을 지고 있죠. 요즘 젊은 배우들이 템포가 빠르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데 익숙해 생각 없이 날려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 대본에 쓰여 있는 활자를 정확하게, 정성스럽고 진실되게 관객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연기를 보여주려 하지 말고, 대사를 제대로 전달하라'는 디렉션을 이번에 많이 했습니다."
▶ 한국연극은 1990년대 이후 한일 연극 교류가 매우 활발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초기에는 김수진 연출가의 영향도 컸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의신 연출가님이 한국 연극에 끼친 영향도 큽니다. 앞으로 한일 연극 교류의 방향은.
"고수희 씨도 본인의 극단을 만들어 활동해 왔고, 그 극단에서도 재일교포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을 여러 편 올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자주 오지 못했던 기간 동안에도 한국 연극인들이 재일교포의 삶과 역사를 다루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기 때문에, 일본과 한국의 역사·문화 교류는 예전보다 훨씬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도쿄에서는 최근 몇 년간 이성곤 교수와 함께 '한일 희곡 리딩 공연'이 열리고 있는데, 그 낭독 공연을 보러 오는 일본 관객들이 한국 희곡에 대해 굉장히 높은 흥미와 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참 반갑고, 교류가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앞으로 한일 연극 교류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솔직히 정확히 읽히지는 않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두 나라가 더욱 밀도 높고 진한 교류 관계를 이어갔으면 합니다.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나누고 더 긴밀하게 만나는 시간이 많아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고수희 배우가 리어카를 끌고 가다가 갑자기 주저앉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 장면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인간이 가진 고통과 삶의 통증이 분명히 있는데, 그 고통을 감당하려고 한다가 어느 순간 툭 무너져 버리는 모습 같아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장면을 의도적으로 구상하신 것인지...
"마지막 장면은 아프고 슬프게 끝나는 듯하지만, 그렇게만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리어카가 덜컹하고 멈추는 순간에도 결국 다시 일어나 걸어 나아가죠.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합니다.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야 한다는, 아주 체육적이고 생존적인 메시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한국 배우들과 작업하실 때 느끼시는 점은? 좁혀말하면, 일본 배우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 배우들만의 장점이 이라고 할까요.
"일본 배우들은 예술대학 전공자가 많지 않고, 전공도 다 다르며 살아온 배경도 다양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연기합니다'라며 모인 배우들이 많고, 거칠고 초짜 같은 느낌이 있지만 그 안에서 처음부터 만들어가는 매력이 있습니다. 반면 한국 배우들은 대학에서 연기 전공 교육을 충분히 받고, 다양한 메소드와 지도 방식을 경험해왔기 때문에 디렉션을 빨리 캐치하고 빠르게 표현해내는 장점이 있습니다. 아주 스무스하게 넘어가죠. 다만 때로는 그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길 바랄 때가 있는데, 그 부분은 오히려 잘 깨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영석 배우는 이번 공연에 새롭게 참여하셨고, 고수희 배우는 초연부터 이 작품에 같이해 오고 있습니다. 두 배우에 대한 연출가의 생각은.
"이영석 배우는 이번에 처음으로 아버지 역할을 맡았습니다. 고수희 배우는 초연부터 계속 함께하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캐릭터를 가진 배우입니다. 체격에서 오는 듬직함과 무엇이든 품어줄 것 같은 힘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섬세한 연기를 해냅니다. 그런 면이 제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와서, 일본에서는 쉽게 찾기 힘든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이신지..
"내년에 작업할 작품들은 이미 스케줄이 결정되어 있습니다. 먼저 2026년 1월에는 대부분 대학교 친구들이 아는 작품, <우리 읍내>를 공연합니다. 이번에는 일본에서 평균 연령 75세인 배우들과 함께 무대를 만들 예정이에요. 함께 하겠다고 모여준 배우만 40명 가까이 됩니다. 인원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품을 <우리 읍내>로 정하게 되었죠. 연습을 해보니 75세 할머니 배우들이 젊은 처녀 역할을 하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2008년에 한국에서 초연한 정의신 작·연출의 〈야끼니꾸 드래곤(용길이네 곱창집)〉은 올해 한일 수교 60주년 특별 공연으로 예술의전당(CJ토월극장)으로 돌아왔고, 노포의 연극성을 그대로 보여준 공연이었다. 배우들도 살아 있었고, 3시간을 집중한 관객들도 살아 있었던 〈용길이네 곱창집〉의 삶의 전경(무대)은 더욱 섬세해져 있었다. 배우들의 강렬한 에너지는 재일한국인으로서 견딜 수 없는 삶을 토해내는 아픔의 소리로 가슴에 박혔고, 정의신다운 웃음 코드, 민요, 가요와 장고 리듬들은 차별과 소외의 삶을 씻어내기 위한 아픈 웃음으로 들렸다.
초연 공연 당시 서른세 살로 60대 용길이네 곱창집 고영순을 연기했던 배우 고수희는, 쉰 살이 되어 다시 맡은 극중 인물을 통해 "내가 못 살아, 못 살아…" 하며 한마디 한마디 쌓여가는 감정을 내면으로 용해시켰고,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화병이 걸릴 것 같은 고영순의 삶이었다. 그 마음을 묵묵히 받아내는 용길이 역의 이영석 배우도 있고, 한일 배우들의 신명이 살아 있어 노포의 연극성을 제대로 보여준 〈용길이네 곱창집〉이 됐다.〈용길이네 곱창집〉을 몇 차례 뜯고 부수고 재건축하듯 다루면서도, 부품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조립해 무대의 미장센을 완성한 정의신 연출의 치밀함도 대단하지만, 넘어지는 장면 하나, 기둥에 부딪히고 대사를 가로채는 타이밍과 웃음 코드의 계산된 연기 설정이 흔들림 없는 삶을 보여준 방법은 무엇일까. 정의신 연출은 '반복'이라고 말했다. "삶은 익숙해져야 하고, 허구의 삶이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반복하는 연습뿐이다"라고 말했다. 막내아들로 분한 토키오(키타노 히데키)에게만 "희곡을 읽고 극중 인물을 이해해 진실되게 연기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전부였다고 한다.
정의신 연출은 "초연 때 배우들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한국 공연의 〈용길이네 곱창집〉을 함께해 줬으면 했는데, 다들 나이가 들고 주인공만 하고 싶어서…(웃음) 대체로 많은 배역들은 그대로지만, 이번 한국 공연에서 바뀐 배우들도 잘해 줬습니다"라고 말했다. 배우들이 일본에서 60일 동안 연습하며 매일 런스루로 반복 연습을 버텨낸 것이, 제대로 된 노포의 연극성을 보여준 〈용길이네 곱창집〉이 된 이유다. 강렬한 장면들, 아픈 장면들이 넘쳐나지만 그중에서도 용길이네 집이 철거되며 용길이가 밀고 가는 리어카 적재함 위로, 그 아픔을 안은 고영순이 털썩 올라타 주저앉지 않고 다시 희망으로 전진하는 장면은 짠하고도 아프다. 토키오의 죽음 장면 또한 그렇다. 한일 수교 60주년으로 돌아온 〈용길이네 곱창집〉은 버릴 것이 없는 공연이었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댓글 많은 뉴스
李대통령, 부전시장서 '깜짝' 고구마 구매…"춥지 않으시냐, 힘내시라"
군위군, 민생안정지원금으로 주민 1인 당 54만원 지급키로
"李, 입틀막법(정보통신망법) 거부권 행사하라"…각계서 비판 쇄도
李대통령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태어난 예수의 삶 기억"
'윤석열 멘토' 신평 "지방선거 출마 권유 받아…고민 깊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