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이 쓴 글은 웬만한 소설가나 시인의 산문보다 좋다. 여기서 좋다는 말은 내 취향에 맞는다는 의미이고, 지리멸렬 복잡다단하지 않다는 얘기다. 영화감독은 시나리오를 통해 쉽고 직관적으로 그러나 자기만의 속내를 압축하여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재주를 지닌 사람이기 때문. 박찬욱의 영화 글은 말할 것도 없고 윤가은의 산문은 유쾌하며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니시카와 미와의 저작도 흥미롭다. 문자로 기록한 메이킹 필름이라고나 할까. 여기에 최종태라는 이름 하나를 더 붙이기로 한다.
2006년 이준기·이문식 주연의 <플라이, 대디>를 연출한 최종태의 책 『만신창이의 승자』 는 이렇게라도 버티면서 희망을 놓지 않겠다는 필사의 분투기이다. 작가 스스로 만신창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만큼 영화는 그의 삶을 손쉬운 행복으로 인도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글을 쓰고 각본을 만들고 영화를 찍고 기뻐하거나 좌절하다가 다시 새로운 희망을 품고 달려가는 과정이 그의 삶에서 행복과 환희를 안겼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책은 총 다섯 편의 영화를 텍스트로 놓고 진행된다. 영화 이야기가 바닥에 흐르지만, 진짜는 그 속에 담긴 인생사 희로애락에 대한 성찰이다. 타고난 불행과 마주하는 법에 관하여, 비루하고 막막한 현실에 대하여 친절한 눈빛과 다정한 어조로 위무해주는 최종태의 글은 묘한 힘이 있다. 단 한 순간도 세상이 내 편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들과 나로 사는 게 힘든 누군가에게 다독이는 말들이 고맙다. 이를테면 막다른 길에서 절망을 마주했을 때 극단적 선택 말고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얘기한다. "고요한 밤에 잠들어 있는 자신만의 환희를 발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실한 나와 마주합니다."(63쪽)
신학을 공부한 작가의 이력이 책 곳곳에 인장처럼 새겨있고, 종교와 철학 용어를 최소화하면서도 적재적소에 슬그머니 끼워 넣은 통찰이 범상치 않다. 예컨대 학창시절 성경책을 읽으며 신은 매우 불공평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고 밝히면서, 성경에 나오는 어떤 씨앗이 비옥한 땅에 떨어지면 잘 자라나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자갈밭에 떨어지면 말라 죽는다는 비유를 든다. 그러니까 "'씨앗'이 어떤 특정한 사람이고 '씨앗이 떨어진 땅'이 그 사람 운명이라고 한다면, 신이 정한 운명을 마주한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오직 순종 뿐" 아니겠냐고. 삶의 전제가 이토록 부조리하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고 푸념하는 작가다. 운명이라는 도도한 강물을 건너는 법은 각자가 찾아야 할 일이지만, 최종태 같은 이가 귀띔해준다면 몇 배 수월하고 편안하지 않을까.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종교와 많이 닮았습니다. 성공을 해서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담을 간증처럼 말합니다."(83쪽) 어느 쪽이든 간증의 핵심은 내 인생이 어떻게 변화했으며, 당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희망과 행복의 판타지를 전파한다는 점에서 같다.
"신은 우리가 승진을 하고,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선언하면서,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중요하며 "그것이 인간이 존엄한 이유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라는 최종태.
작가의 일관된 주장은 가짜 희망이 당신의 행복에 덧씌워질지라도, 우리는 희망을 포기할 수 없고 행복도 포기할 수 없지 않냐는 것이다. 그렇게 『만신창이의 승자』는 지금, 우리가 꿈꾸는 희망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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