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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36>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매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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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이방자(1901-1989),
이방자(1901-1989), '홍백매(紅白梅)', 종이에 담채, 24.4×52.3㎝,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단정하고 깔끔하게 그려진 소박한 매화그림이다. 왼쪽 위에서 부드럽게 내려온 백매 한 가지와 그 뒤로 조금 작은 홍매 한 가지가 드리워진 도수식(倒垂式) 구도의 '홍백매'다. '방자'로 서명하고 '이방자(李方子)' 인장을 찍었다.

이방자는 원래 일본인 여성으로 이름은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梨本宮方子)였다. 일본의 황족 가문에서 귀한 신분으로 태어난 그녀는 스무 살 때인 1920년 도쿄에 살고 있던 조선인과 결혼하게 된다. 그녀의 배우자는 바로 영친왕 또는 영왕으로 불린 대한제국 황태자 이은(1897-1970)이다. 조선과 일본 지배층의 결합을 '일선동조', '내선융화'의 모범적 사례로 선전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기획이었다. 당연히 한국에서는 이 강제 결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은은 신식 교육을 받기 위해서라는 빌미로 1907년 11세 때 이토 히로부미의 손에 이끌려가 강제로 일본에 살고 있었다. 인질이었다.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이은은 왕실의 혈통을 이어받은 최고 서열로 '이왕(李王)'으로 불렸으나 계속 일본에 억류돼있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한국이 광복됐으나 이은과 이방자는 재일한국인으로 등록하고 여전히 일본에서 살았다. 이승만 정권이 귀국을 막았기 때문이다. 1963년에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은의 건강이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부부는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이방자는 이은이 작고한 후에도 영친왕기념사업회, 자혜학교, 명혜학교 등을 설립해 사회사업을 계속하다 머물던 창덕궁 낙선재에서 89세로 작고했다.

이방자가 글씨, 그림, 도자기의 서화, 칠보 등 다양한 미술작업을 한 것은 봉사활동을 위한 자금 마련이 목적이었다. 제국주의 정략결혼의 희생자인 가혜(佳惠) 이방자는 국가의 생활비 보조를 받는 어려운 처지에서도 우리 사회의 약자를 위해 평생 헌신했다.

'홍백매'는 이방자의 고결한 정신에서 나온 그림이다. 오른쪽에 찍은 한장(閒章) '청락(淸樂)'의 뜻처럼 이방자에게 그림 그리는 일은 '맑은 즐거움'을 향유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이타적 행위였다. 이방자는 그림으로 청락을 누리며 인간애를 실천했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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