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콘서트에 아코디언을 객원으로 부르자고 음악감독이 제안한 건 몇 년 전부터였다. 정말 소리가 다르다고, 돈은 비싸지만 그만한 값어치를 한다고 했다. 최고의 아코디언 연주자란 것도 알고, 당연히 비싼 개런티를 지불해야 하는 것쯤 나도 안다. 비용보다 더 마음에 걸린 건 서울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점이었다. 로컬 연주자로 공연을 치른다는 내 원칙에서 어긋나기 때문. 올해 공연을 앞두고 스페셜 게스트 얘기가 다시 나왔다. 고민 끝에 결정했다. 그런데 합주 때 오지 못했다(내심 불안했다). 그의 얼굴을 본 건 현장 리허설이었다.
연주자로 확정하자마자, 나는 그가 출간한 책을 사서 읽었다. 공연 당일에나 볼 수 있는 귀한 몸을 만나 '잘 부탁한다'는 말 한마디로는 벽을 허물기 힘들다고 여겼다. 책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현장에서 만난 그에게 책 얘기로 마음을 열었다. 소탈한 듯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한국 최고의 아코디어니스트 정태호는 그렇게 내 무대에 섰다.
정태호가 쓴 '악사의 처방전'은 한 사람의 인생을 함께 한 술과 음악의 연대기다. 술을 먼저 표기한 건 음악 얘기에 술이 안주처럼 따라오는 게 아닌 술 얘기를 하려고 음악을 끌고 들어왔기 때문. 함께 멱살 잡히기는 영화라고 다를 바 없다. 예술가와 술은 진정 떼려야 뗄 수 없는 건가? 인천의 준치 횟집과 밴댕이가 펄떡이고 압구정동 스피크이지 바의 쿠바 리브레가 유혹하며 창원 진동항의 미더덕회와 샤도네이 화이트와인이 책 위에서 춤춘다.
종종 필름이 끊기고 술맛은 기억 너머로 사라질 정도 술을 좋아하지만, 그 나름의 규칙도 원칙도 분명하다. 음주인을 위한 10가지 주(酒)계명을 스스로 정해놓고 지키는데, 예를 들면 일어설 때를 알고, 계산을 잊지 말고, 정치·종교·개인사로 조언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요컨대 "누군가의 호의와 베풂이 술기운에 잊혀져서도 안 되고, 모두의 즐거움이 한 사람의 부담이 되어서도 안 된다."(62쪽)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태호는 단지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의 전통술이 일제강점기 말살된 것을 안타까워 직접 술 빚기를 배우기까지 한 진정한 주당이라고나 할까.
책 말미에 이르면 첫 만취(첫 만취 30주년 되는 해라니, 이걸 기념하는 사람도 있더라)를 안긴 소주에 대한 애증을 듬뿍 담는데 "희석식 소주가 나쁜 게 아니라 희석식 소주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나쁜 것"(188쪽)이라면서 각 지역의 다양한 대표 소주를 소개하고 작은 팁까지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영화음악상 수상자답게 영화를 다루는 솜씨 또한 훌륭하다. '패왕별희'를 보러 한국영상자료원을 찾고 1950년대 작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를 언급하거나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봄날은 간다'로 흠뻑 감성 젖은 필치를 쏟아낼 때, 진저리칠만한 외로움이 배인 아코디언의 짙은 바람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밴드 '라벤타나'의 리더이면서 최백호 콘서트의 전담 아코디언 주자 정태호. 대가수를 향한 경외와 존경이 담긴 마지막 꼭지는 술로 절여진 책의 화룡점정을 찍는다. "85년이에요. 인기도 떨어지고 일도 없어서 집에서 기타나 치고 있는데, 저기 부엌에서 제 아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 거예요."(222쪽)로 시작되는, 명곡 '낭만의 대하여'의 탄생 일화를 최백호의 입을 통해 얻어듣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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