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별세(別世)했다. 우리는 이 수석부의장을 김대중 정부 교육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단군 이래 최저 학력이라 불리는 '이해찬 세대'를 만든 사람, '버럭 이해찬(걸핏하면 소리 지름)' 정도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고함만 지른 게 아니라 한국인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해찬 세대 진보 인사들의 세계관(이하 이해찬 세대 세계관)'을 압축하면 '우리는 과거 일본 식민지였고, 현재는 미국 식민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들 중에는 북한의 6·25 남침을 민족해방전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에게 친미(親美)는 '종속주의', 일본과 긴밀한 협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토착왜구'에 다름 아니었다.
'이해찬 세대'의 반미·반일·민족주의 세계관은 외교·안보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에게 미국은 한반도 분단을 고착화(固着化)하는 세력이었다. 따라서 한미동맹은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극복 대상'이었다. 한미동맹이 안보는 물론 외교·경제·기술 협력의 핵심축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찬 세대의 한일 관계는 '역사 바로 세우기'가 기준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과잉(過剩)돼 안보·경제까지 실용이 아닌 '역사와 윤리 영역'에 가두기 일쑤였다. 이는 한국의 전략적 유연성과 실용 외교 공간을 스스로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시절의 감정적 반일 프레임에서 잘 나타난다.
북한에 대해서는 '민족 공동체'라는 인식이 강해 현실적인 대북 정책을 어렵게 했다. 북한 체제·인권 문제는 상대적으로 경시(輕視)되었고,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책임 역시 미국과 국제사회로 전가되는 담론이 강화되었다.
그들의 영향을 받은 국민들은 안보·외교·경제를 국익이 아니라 이념의 영역에서 인식한다. 덕분에 진보 진영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겠지만, 한국은 국제 사회에서 감정에 휩쓸리는 나라, 약속도 쉽게 파기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떠안았다.
온갖 어려움에도 나라를 세우고, 세계 최빈국을 선진국으로 이끈 것은 이해찬류 세계관이 아니라 그들이 쓸어버리고 싶어 했던 보수 우파 가치였다. 이제 우리는 이해찬 수석부의장과 함께 그들이 퍼뜨린 '시대착오적 세계관'과도 작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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