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녘 대구의 어느 좁은 골목길 한구석에서 두 형제가 길을 걷다 걸음을 멈춘다. 형이 슬며시 바지춤을 내리자 뒤따르던 동생도 바지를 내리며 땅바닥에 '지도 그리기'를 하고 있다. 마른 흙바닥 위로 뜨거운 오줌 줄기가 닿는 순간, 치익 소리와 함께 매캐한 흙내음이 확 끼쳐 오른다.
아이들은 그것을 '지도를 그린다'고 불렀다. 누구의 줄기가 더 힘센지, 누가 더 끊기지 않고 거대한 대륙을 완성하는지가 그날의 승부를 결정지었다. "니 지도는 와 이래 쪼매나노? 내 지도 단디 봐라, 이건 완전 태평양 아이가!".짙은 갈색으로 변해가는 흙바닥 위로 한반도가 생겼다가, 이름 모를 먼 나라의 섬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에게 '오줌싸개'라는 별명은 그리 수치스러운 일만은 아니었다. 밤새 이불 위에 지도를 그린 다음 날 아침이면,어머니는 "아이구, 이 문디 자슥아! 또 지도 그맀나!"하고 머리에 '키'를 씌우고 내보내면 아이들은 이웃집 대문을 두드려야 했다. "오줌싸개 소금 받으러 왔심더" 하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면, 옆집 할매는 "우야꼬, 이 귀한 소금을 오줌싸개한테 주게 생겼네" 하면서 빗자루로 키를 '탁탁' 때리며 겁을 주었다.
그러면서 이내 한 바가지 가득 하얀 소금을 퍼 담아주시곤 했다. 그 소금 안에는 아이가 무안해하지 않길 바라는 어른들의 따뜻한 정이 담겨 있었다.
이제는 뜨거운 오줌 줄기에 제각각의 모양으로 변해가던 영토의 형상도 보기 힘든 풍경이 지만 가끔 해 질 녘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코끝을 스치는 맵싸한 흙내음 속에 그때 그 시절, 세상에서 가장 큰 지도를 그리겠다며 폼을 잡던 코 흘리개 동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사진작가 김익원의 1961년 작품 '형제'는 두 어린 형제가 나란히 서서 거리낌 없이 소변을 보는 모습으로 지금의 잣대로는 생소할 수 있지만 1960년대 초반 대구의 골목이나 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정겨운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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