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41> 눈길을 헤치고 벗을 찾아가다, 설중방우도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조영석(1686~1761),
조영석(1686~1761), '설중방우도(雪中訪友圖)', 종이에 채색, 115×57㎝, 개인 소장

조영석의 '설중방우도'는 당당한 회화 작품으로서 풍속화의 시작을 알리는 명작이다. 산과 지붕이 하얗게 눈에 덮였고, 들이치는 눈보라를 막으려 솔가지를 꺾어 달아낸 송붕(松棚)에도 눈이 쌓여 긴 작대기 세 개로 받쳐놓았다. 시냇가 돌로 무늬를 넣어 기단을 쌓아 초가로 앉힌 산중의 서재다. 동그란 무쇠 손잡이가 달린 띠살문이 활짝 열려 있어 두 분이 마주한 모습을 보여준다. 분명 우리나라 집이다.

도시에서 물러나 있는 벗을 찾아 눈길을 헤치고 찾아온 손님은 갓 아래에 방한용 휘항을 단단히 둘렀고, 주인은 복건에 심의를 입은 유학자 차림이다. 분명 조선의 선비다.

대문간을 보면 문은 사립문인데 대문 지붕을 올려 격조를 갖추었다. 담은 마른 식물 줄기를 삿자리처럼 엮어 세운 바자울이다. 손님은 안장을 듬직하게 장착한 소를 타고 오셨다. 고삐를 잡은 동자는 집안으로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맞이하는 동자는 두 팔 벌려 환영한다. 분명 조선의 소년이다.

조영석은 친구의 만남, 양반의 놀이, 서민의 노동과 여가 등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을 의미 있게 바라보았고, 그림으로 그렸다. 풍속화는 조영석의 뚜렷한 소신에서 나왔다. 조영석은 그림을 보고 그림을 전해 그리는 이화전화(以畵傳畵)는 잘못된 방법이며, 사물을 마주해 참모습을 그려내는 즉물사진(卽物寫眞)이라야 살아있는 그림인 활화(活畵)가 된다고 명쾌하게 주장했다.

조영석이 이렇게 주변을 관찰해 그림으로 그린 '동국풍속(東國風俗)' 70여 첩(帖)을 어떤 사람이 모사했다. 이를 허필, 유득공, 이진이 감상하고 평을 달았다고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나온다.

조영석은 한양 순화방 백악산 아래에 관아재(觀我齋)를 짓고 겸재 정선과 오랫동안 이웃사촌으로 살았다. "만리강산을 일필휘지로 그려내는 웅혼한 필력과 생동하는 기세에 있어서라면 내가 그대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나 터럭 하나, 머리카락 한 올까지 실물과 똑같이 정교하게 그려내는데 이르러서는 그대가 반드시 나에게 조금 양보해야 할 것이오"라고 자부했던 조영석이다. 우리 강산과 우리의 모습이 발견되던 18세기였다.

오랫동안 도판으로 보아왔던 조영석의 대표작 '설중방우도'를 국중박 서화실에서 실물 영접하며 기쁜 시간을 보냈다.

대구의 미술사연구자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거대양당의 6·3 지방선거 공천이 확정되면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출마 가능성이 부산 북구갑과 대구 수성구갑에서 주목받고 있다. 북구갑...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중동전쟁으로 인한 고유가와 고물가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1인당 최대 60만원의 고유가 피해지원금이 27일부터 지급된다. 정부는 총 6조1천...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