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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작업을 바라보는 세 비평가의 시선…비영리전시공간 싹 '쓱싹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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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주 개인전 '슬픔은 준비할 수 없어'
서지수·안소현·태병은 비평…11월 12일까지

이민주, 슬픔은 준비할 수 없어, 2026, 캔버스에 아크릴, 목탄, 162.2x130.3cm.
이민주, 슬픔은 준비할 수 없어, 2026, 캔버스에 아크릴, 목탄, 162.2x130.3cm.

#이민주는 슬픔을 거스르거나 거부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그 역치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되 슬픔에 형태를 부여하고, 그것을 만지고 쌓고 겹치고 흩뜨리는 과정을 거치며 대상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간다. 그렇게 한때 자신에게만 속해 있었던 기억이 공간화되면서 타자와 접속하고, 못내 한 사람의 상실은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상실과 연결되며 거대한 원을 이룬다.(서지수)

#이민주의 회화는 바로 이러한 애도의 과정, 죽음이 지나간 이후에도 계속되는 시간에 머문다. 그의 작품에서 상실은 비장한 통곡의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일 접하는 일상의 익숙하고 헐거운 감각 안으로 스며든다. 한 존재가 사라진 뒤에도 관계는 계속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무덤이라는 형상으로 시작해 사물과 풍경, 이름 없는 생명들로 번져간다.(안소현)

#층마다 다채롭게 교차하는 색채와 표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감 자국은 각각의 층을 저마다의 서사가 숨 쉬는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만들어낸다. 구조물의 하단을 에워싼 무성한 녹색 봉우리들은 폭신하고 안락하게, 이 세계를 지켜내는 보호자가 되어주는 듯하다. 이제 이민주 작가의 세계는 비관과 슬픔, 상실의 흔적을 보듬어 안고 마침내 평온한 언덕 위에 자신만의 굳건하고 다정한 세계를 세워 올린다.(태병은)

비영리전시공간 싹(SSAC)이 '쓱싹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민주 개인전 '슬픔은 준비할 수 없어(Nothing Prepares Us for Sorrow)'을 선보이고 있다.

2020년부터 이어져 온 쓱싹프로젝트는 작가와 비평가의 협업을 통해 동시대 미술을 다각도로 살펴보는 전시·비평 프로젝트다. 신진 비평가에게는 작가의 작업을 깊이 연구하고 비평을 발표할 기회를 제공하며, 작가에게는 자신의 작업을 새로운 언어로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올해는 서지수, 안소현, 태병은 세 비평가가 참여해 이민주의 작업을 각자의 시선으로 읽어낸다.

이민주는 가족의 장례,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무덤, 유물, 묘안(猫眼), 고양이 등의 모티프를 회화와 설치로 풀어왔다.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형상들은 사라진 존재를 기억하는 흔적이자, 부재 이후에도 이어지는 관계를 담는 매개로 등장한다.

전시는 슬픔을 극복하거나 끝내야 할 감정으로 다루기보다,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시간과 그 안에서 변화하는 기억에 주목한다. 작품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둥근 형상과 겹겹이 쌓인 색과 선은 이러한 주제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무덤에서 출발한 형상은 산과 언덕, 눈물과 신체의 일부, 정체를 특정하기 어려운 구조물로 변주된다.

이민주는 밝고 서정적인 색채와 유연한 조형 언어를 통해 죽음과 상실의 이미지를 하나의 의미로 고정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라진 존재에 대한 기억이 다양한 형태로 남아 일상과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세 비평가는 각기 다른 관점에서 작품에 접근한다. 서지수는 이민주의 작업을 '기억의 밑동을 굴리는 일'로 읽는다. 반구 형태가 사랑하는 존재를 감싸고 붙드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해석한다.

안소현은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관계와 애도의 시간에 주목한다. 개인의 상실에서 출발한 작업이 이름 없는 생명들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생태적 순환으로 확장된다고 본다.

태병은은 무덤이 고정된 죽음의 상징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는 과정에 주목하면서, 이민주의 회화가 연약한 존재들이 서로의 거리를 지키면서도 함께 머물 수 있는 세계를 만든다고 읽는다.

정연진 싹 디렉터는 "이번 전시는 이민주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해 세 비평가의 시선을 통해 상실과 애도의 의미를 다각적으로 살펴본다"며 "슬픔을 극복해야 할 감정으로 바라보기보다, 상실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과 그 안에 남은 기억을 함께 돌아보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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