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칼럼-이양원의탄식을 생각한다

김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APEC정상회담의 첫번 발제자가 되고 그 무역투자 위원회에서 한국이 첫번 의장국이 되는 것이 모두 미국측 추천과 주선으로 되었다는 것을 듣고 흐뭇해 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대통령 자신도 그 귀국 제일성에서 이번에 한국의 위상이 몹시 높아졌다는 자랑을 했다.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경과를 보면서 {높으나 높은 남게 날 권하여 올려두고}하는 조선조 선조때의 고관 이양원의 탄식을 연상한다.

**예우 뒤에 오는 것**

이번 대통령은 미국의회에서 {해리만 민주주의 상}을 받고 어느 대학으로부터는 명예박사학위도 받았다. 미국과 북한이 핵문제를 놓고 한국을 따돌린채협상을 하지나 않나 해서 의심을 해왔는데 미국 대통령은 한국측에 협상의주도권이 있어야 한다고 언명했고 한국편을 많이 들어주었다. 칭찬도 많이 듣고 대우도 많이 받고 과분한 위상을 받아안고 돌아왔다. 옛날 한 장수는 부하의 발에 종기가 났을때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어 낫게 해주었다. 휴가를 얻어집으로 가서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어머니는 [이제 우리 아들은 죽었구나]했는데 과연 전쟁이 터지자 아들은 맨먼저 나가서 장수를 위해 목숨을바쳤다는 이야기가 문득 생각난다.

필자는 가끔 아시아의 국제학술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하는 일이 있는데 흔히 요긴한 역할이나 연설을 부탁받게 된다. 그 까닭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일본은 모두가 미워하는 나라이고 중국은 대국이라 모두가 견제하려 든다.그 틈바구니에서 아무 실속은 없으나 다소의 영광이 한국같이 만만하고 애매한 나라의 대표에게 떨어진다. 유엔이나 유네스코나 국제올림픽위원회 등의사무총장이나 위원장을 대개가 약소국가에서 맡게 되는 이치가 그런 데 있는것이다. 우리 경제가 승승장구하여 국력이 커지면 다른 나라는 시기 질투하고 견제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저조해지면 이는 타국이 잘 되는것을 의미하므로 타국은 우리나라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게 되고 따라서 칭찬을 늘어 놓고 추켜 올리게 마련이다. 이것이 노대통령이나 김대통령이 타국으로부터 환대를 받는 숨은 이유이다. 그런데다 이번의 환대는 그 대가로 우리가 내어 놓아야 할 것이 정해져 있으니 그것이 문제이다.**골목대장 노릇 불리**

이번의 APEC이 미국의 주도로 된 것임은 다 아는 바인데 미국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외교의 대국이다. 그들은 APEC을 마치 한국이 주도하는 것처럼 해서한국에게 골목대장 노릇을 시키려는 것이다. APEC이란 요컨대 아시아 태평양나라들이 서로 시장 개방을 하자는 일종의 국가 모임이다. 한국은 이제 그신분이 앞에 나서서 시장개방을 하자고 주도해야 할 그런 신세가 되었다. 그러니 어찌 쌀 시장 개방을 면할수 있겠는가. 쌀 시장이 개방되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미국쌀이 아무리 싸도 우리는 우리 농촌의 유지를 위해서 한국쌀만 사먹어야 하는 것이다. 개인의 손해를 무릅쓰고 누가 그렇게 하겠는가. 한국농촌이 망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농업국이던 이 나라가 온전히 공업국이되는 혁명을 앞두게 되었는데 이는 마치 한 가정에서 주부의 역할분담이 없어지고 남편을 따라 모두가 공장에 나가 일하고 미국 밥을 사먹게 되는 것과같다. 지금까지 오순도순 농촌이 있던 행복한 나라였다면 그대로 유지되는것이 행복인데 이 행복이 지금 떠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우쭐댈 때가 아니다**

순전히 공업국이 되었을때 우리 공산품을 늘 사줄 외국들이 계속 남아있을리없고 느닷없이 장사가 안되는 날이 올터인데 그때 농산물의 자급자족이 아쉬워 농촌을 찾았을 때는 이미 농촌이 없어진 뒤일 것이다. 갑자기 나라위상이높아졌다고 우쭐댈 때가 아니다.

.................................................................주:이양원(1533-1592)은 백춘 호는 노저. 임진왜란때 경기도 양주 해유령싸움에서 승리, 그 공으로 영의정(선조24년)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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