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밤이 깊어져 갔다. 지상에 걸린 창으로 새어들어 오던 불빛이 자취를감추었고 어디선가 아련히 들리던 소음도 잠잠해져 있었다. 동유는 예배용긴 의자에 다리를 뻗고 몸을 눕혔다.얼굴로 쏟아지는 스탠드 불을 끄자 어둠이 얼굴을 덮었다. 하루의 잔상들이눈앞에 가물가물거리면서 사지로부터 나긋한 피로가 몰려왔다.눈을 감고 있는데 머리맡에 무언가 걸리는게 있었다. 손을 뻗어보니 전에 의혜가 팔꿈치 상처를 닦아준 손수건이었다. 동유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덮었다.연습도중에 목덜미의 땀을 닦아낸 손수건이라 퀘퀘한 땀냄새가 콧구멍으로빨려들었다.
그리고 깜빡 잠이 들었던가, 아니 잠이 채 든것이 아닌지 모른다. 동유는 어느순간 자기도 모르게 손수건에서 풍기는 땀냄새 사이사이에서 의혜의 몸냄새를 맡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손수건을 뒤집어서 맡기도 하고 손가락으로얇은 천을 돌돌 말아 콧구멍에 아프도록 쑤셔넣어 킁킁, 숨을 들이켜기도 하였다.
정말이지 희한한 일이었다. 퀘퀘한 냄새 사이로 로숀냄새가 났고 립스틱을입술에 잘못 그려 지울때 묻은 화장품 향기도 느껴졌다. 그렇게 냄새를 맡다보니 더불어 그녀의 모습도 눈에 보이는 듯 하였다. 스카프처럼 목을 두르고화초에 물을 주는 모습. 강가에 예쁜 조약돌을 그 손수건에다 담는 모습...갈수록 그의 몽환같은 상상이 치닫고 있었다. 발가벗은채 커피를 타서 방으로돌아와 손수건을 네모나게 펴고 그 위에 알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가 하면, 목욕을 마치고 타올대신 손수건으로 유방과 배꼽언저리의물기를 훔치는 그녀가 보였다.
동유는 눈을 떴다. 영상을 노골적으로 짜맞추는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했다.실내는 깜깜했다. 눈을 뜬 것이나 감고있는 것이나 다를바 없었다. 그러나,자신의 계면쩍음과는 다르게 마치 캄캄한 인화실에서 사진작업을 하듯이 눈앞에서는 한층 선명하고 색정적인 영상들이 필름처럼 착착 넘어가고 있었다.그만 불을 켜려고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웬지 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낮동안 의혜와 아쉬운 만남을 갖긴 했지만 이렇듯 자신의 밤잠까지 침투하리라곤예상치 못하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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