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재소설-선인장이야기(70)

그때 나는 속으로 삶을 견디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대답을 스스로에게 하였다. 물론, 나도 이 삶이 생소하고 힘들 때가 있긴하지, 하며 토를 달기는 했지만.밤이 깊었고 혜수는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듯 가만히 천장만 쳐다보며 드러누워 있었는데 나는 그애의 두 뺨에 흐르는 눈물을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얼른 병실을 나가 버렸다.

다음 날 뜻밖에 병실로 그가 찾아 왔다. 집으로 전화를 했다가 입원 사실을알았다고 했다. 마침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던 혜수가 깊은 잠에 빠져 있어서 내가 그에게 차나 한잔 하자고 부탁했다. 차를 마시며 혜수가 출가할 생각을 언뜻 비추더라고 하자 그는 이마에 주름이 생길만큼 깊은 생각에 잠겼다.자판기에서 뽑아든 캔커피를 다 마셔갈 즈음 그의 손에 들린 캔이 꽉 찌그러졌다. 얼마나 세게 쥐었던 것일까. 그의 손에서 피가 배어져 나왔다. 그는자기의 손이 베인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이런 것이었구나...... 이렇게...... 내가 곁에 있다고 해도 전혀 소용에도 닿지 않는다는 말이지. 너무나 가볍게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잘들 살아 내는데...... 알고는 있었어도. 알 수는 있지만, 그래도......]그때처럼 내게 그들 둘 사이가 잘 이해된 적도 없었다. 그는 혜수의 그 지나치게 진지한 삶의 방식을 견디며 자신의 젊은 한 시절을 헌신하며 살아왔고혜수는 그에게 온전히 기대어 지금까지 버티어 온 것이었다. 나는 그 둘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축내고 싶지 않아 자리를 비켰다.

그토록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두고 혜수는 무엇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온 생명을 바쳐 사랑할 만한 사람을 평생토록 만나지도 못하고 살아간다는 걸 생각하면 혜수와 그는 그처럼 서로를 만난 것만으로도 더없이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혜수에게 되돌아가서 더 이상소중한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어 두번이나 오던 길을 되돌아 가려다가 발길을 돌렸다. 모든 것이 사족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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