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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타인의 시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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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가길에 우리 동네 책방 겸 문구점인 김씨아저씨 가게에 들러 만년필용 잉크 한 병을 샀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상큼한 빛깔의 봉투와 편지지도 샀다. 그림자처럼 은은한 호수 풍경이 박힌 옥색 편지지와 담홍색 엽서 봉투를 내주며 문구점 아주머니가 말했다.[요즘 승혜 얼굴이 점점 이뻐지네. 남자 친구라도 생겼나 부다.] 그 아주머니도 죄 알고 있었다. 몇 달 전, 우리집에서 일어난 불행에 대해. 그리고 그로 인한 나의 심적 충격이 크리라는 것도. 그러나 나는 내색 않고 그것을 받아 담담히 가게를 나왔다.

문구점 맞은편에는 놀이터와 경로당이 있고, 경로당 앞에는 초여름이면 등꽃이 소담스런 페르골라가 있었다. 하늘이 푸른 멍처럼 촘촘히 박혀 있는 페르골라위에는 언니와 나만이 아는 비밀 하나가 숨어 있었다. 어느 날 언니가내게 그 사실을 알속해 주었다. 나는 그 순간 창피스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 후로 나는 그 곳을 지나칠 때면 애써 고개를 꺾곤 했다.꼭 누군가가 내 덜미를 낚아채어 이렇게 다그칠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못된 짓 한 년이 늬 언니지?

전에는 종종 그 밑 벤치에 앉아 동네 풍경을 감상하던 정겨운 곳이었다. 그러면 내 마음속에 끼어 있는 너겁 같은 무엇이 서서히 걷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기분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결코 그 행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언니는 분명히 말했었다.어느 날 밤에, 감쪽같이, 자기 몫의 유서를, 생리대에 싸서 그 위로 집어 던졌다고. 선연한 입매로 보아 언니가 결코 거짓부리로 이죽거리는 것 같지는않았다. 나는 그 순간 얼굴이 홧홧 달아오름을 느꼈다.

[언니,지금 맨정신으로 하는 소리야?]이윽고 내가 덴겁한 목소리로 물었을때 잠옷으로 갈아입던 언니는 오히려 한술 더 떠 대꾸했다.[맨정신이 아니라, 너에게 우먼 정신으로 말하는 거야. 너도 생리 때 그래봐. 속이 후련해질 거야.팔매질하며 쌍욕을 퍼부으면 더 좋고.] 그리곤 언니는 침대 위에 벌렁 널브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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