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어드는 저녁-6잘생겼다는 그 사람은 진짜 우리 외삼촌이었다. 지금은 부도가 나 도산해버리고 말았지만 꽤나 큰 직물 공장을 운영해 오던 외삼촌은 그 무렵 지푸라기라도 붙들고 싶은 절박한 상황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속에 청대독같은 문신을 새기듯 아려 온다.
나는 서둘러 밥을 안치고 찌개거리를 장만하고 전자 오븐에 구울 갈치 도막을 씻었다. 이남박에 물을 떠다 그것을 담가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조물락거리는 나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러웠다. 전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비위가 약했던 나는 어머니가 구워 주시는 비릿한 생선을따깜질해 먹기 바쁘게 화장실로 달려가 양치질을 하곤 했다.작은오빠가 소리없이 다가와 등 뒤에서 물었다.
[오늘 주 메뉴가 뭐니?]
[오빠가 좋아하는 갈치구이]
[이제 승혜, 시집가도 되겠다.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 짓는 걸 보니 의젓한새댁 같애]
오랜만에 작은오빠가 농담을 했다. 나는 피, 하고입술을 실그러뜨렸다. 그럴땐 꼭 내 자신이 은유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은유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나는 문득 벽시계를 돌아보았다.
[은유야, 너 어젯밤 11시 15분쯤에 무얼했었니? 어머머머, 샤워했었다구. 어쩜 나하고 꼭 같니. 나도 그 시간에 샤워하고 있었지 뭐니. 샤워를 하면서 은유는 지금 무얼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잖아. 그래서 시간을 봐뒀다가 이렇게 물어 보는 거야. 어쩜 너하고 나하고는 바이오리듬까지 똑같니. 이러다간나중에 결혼해서 사랑할 때도 같은 시간대에 할지도 모르겠다, 얘]언젠가 내가 은유 앞에서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깔깔거렸던 기억이 우련히떠올랐다.
[은유야, 너 엊저녁 여섯시 반쯤에 뭐했었니?]
나는 내일 은유를 만나면 꼭 그렇게 물어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때 내가 기대하는 가장 이상적인 대답은 이렇다.
[응, 그때? 저녁 짓고 있었어. 우리 아줌마가 갑자기 몸져누워 전자 오븐에 갈치를 구우려고 씻고 있었지 않았겠니. 비린내가 손끝에 묻어나서 아주혼났어.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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