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타인의 시간(40)

[아버지, 제발 입 좀 벌리세요]작은오빠의 꼬드김이 시작되고 있었다. 요즘 아버지는 도대체 무얼 잡수시려들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꼭 밥 안 먹으려고 앵돌아져 있는 아이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무엇이 아버지를 저토록 참혹하게 만들었을까.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의 수멍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봇물 같은 것이었을까. 아버지 답지않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안타깝기도 했지만 실망도 많이 했었다. 이미 아버지는 자신의 의지로는 다스릴 수 없는 그 무엇의기능을 상실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형편없이 무너질 수가없는 것이다.

처음 아버지가 수술을 받고 돌아왔을 때만 해도 건강에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첫수술이 잘못 되었는지 다시 몸져 누우시고 급기야 재입원한 뒤부터 뭔가 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또 쓰러지면 어쩌나 하는 그런조바심과 소심함이 늘 아버지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는 것 같았었다. 말하자면 자신감의 상실이었다.

우리가 그런 아버지의 변모한 모습을 보고 불안해 하면 어머니는 아버지에대해 실망했다는 듯이 이죽거리곤 하셨다.

[난 여태 수십년을 한이불 밑에서 잤지만 저렇게 소심한 양반인 줄 몰랐다.또 쓰러져 영영 못 일어날까 봐 저러신다. 옛날부터 겁이 많은 사람일수록명줄은 더 길고 질긴 법이다. 너희들은 아무 걱정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거라.차라리 내가 먼저 죽었으면 죽었지 늬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지는 않을테니, 두고 봐라]

우리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다소 안심이 되었지만 여전히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마치 가뭄살이 들어 시나브로 말라가는 나무 같았기 때문이었다.아버지는 정말 그런 사람이었을까. 사람의 마음은 깊은 물속과 같아서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어떤 장면에 부딪쳤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난다고 한다. 평소에 좋은 이미지의 사람이 형편없어 보일 때도 있고,또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아버지도 겉만 멀쑥했지 속은 형편없이 얕은,정녕 그런 사람이었을까. 나는 거실을 바장이며 초조감을 달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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