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는 추석이었다. 지난주 벌초왔을 때와는 달리 많은 무덤들이 깨끗하게단장되어 있었다. 공동묘지내의 오래된 무덤과 어떠한 연유로 후손이 발길을끊어버린 무덤들은 쑥대.땅찔레.아카시아등 푸나무들이 어지럽게 뒤덮혀 있어서 괜히 속이 상하기도 했다.선대 묘소앞에 서서 잠시 눈을 감아본다. 무덤이 열리고 웃어른이 장례와 임종을 거쳐 장년이 되어 내가 서있는 자리에 선다. 서있는 나는 노인이 되고병고와 싸우다 쓸쓸히 임종을 맞아 잡초덮인 무덤속에 눕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TV카메라가 꽃이 피고 지는 광경을 슬로우스피드로 촬영하여 상연하면 고속의 효과가 얻어지는 것과 꼭 같다. 내가 바로 선대가 되어 무덤속에 눕게 된다는 것은 필연의 사실이다.
**효.부효 개념 변경**
혼자 살다 혼자 죽는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동물사회에서는 자식들과주변 무리들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해서 혼자서 죽음의 여행을 떠나는 짐승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가 아니라 가족규범.가정윤리사회도덕 같은 인륜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에 본래적 고독감을 떨쳐낼수 있었다.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전통적 가족제도가 붕괴되면서사회구조에 크나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고령화사회는 뜀박질로 달려 오고있는데 이를 수용할 국가적&사회적 대책은 전혀 세워져 있지 않기때문에 여러가지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점은 {효}와 {부효}의 개념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혼자 살던 노모가 홀로 죽어도 뒤늦게 알 수밖에없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자식들은 입으론 {부효자식}이라고 통곡해도 마음속으론 {내만한 효자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경노}는 액자글씨일 뿐**
또 구순노모를 더이상 모시기가 어려워진 칠순아들이 노모를 목졸라 죽인후일찍 세상을 뜬 아내의 무덤옆에 암매장한 사건앞에서는 망연자실할 수밖에없는 것이다. 누가 그를 부효자라고 말할 수 있으며 어느 누가 그를 효자라고 말할수 있는가. 국가와 사회가 죄인임에야.
이 문제는 얼마있지 않아 다가올 {나}의 문제이다. {나}도 자식들의 보살핌에서 버려져 홀로 외롭게 죽을수 있으며 또 아흔살 노모를 어쩌지 못하는 난관에 충분히 봉착할수 있는 것이다. 노인문제가 절실한 이슈로 등장했는데도아무런 대책이 없는 우리 현실은 시급하게 타개되지 않으면 안된다. 93년 현재 65세이상 노인인구는 5.4%이나 2021년엔 13.1%로 늘어난다. 전체9%에 이르는 단독가구중 27%가 노인단독가구이다. 그렇게 되면 {경노효친}사상은 횡액액자의 글씨로만 남게되고 노인이 노인을 모시는 이상한 현상속에서 노인의주검은 썩어가는 냄새로만 겨우 이웃이 알게되는 시절이 오게 될것이다. 언제까지사회적 관심사가 현대사회의 속성인 무관심에 밀려 뒷짐만 지고 있을 것인가. 경제가 성장하는 만치 사회보장제도, 특히 노인복지문제도 후진국 수준을 면하도록끌어올려야 하지 않을까.
**{실버}사업 서둘때**
우선 해야 할것은 양로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작업이 시급하다. {양로원}이란 낱말을 {부효}와 연계하여 생각하는 그 잘못된 인식이 노인문제를 해결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윤추구가 아닌 복지차원에서의 {실버 타운} 즉노인전용 주거시설을 건설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평생을 자녀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다 늙어버린 노인들이 자발적 선택으로 입주할수 있고 또 자신의 재산이나 경제능력에 맞는 곳을 택할수 있도록 다양한 규모의 시설들이 갖춰졌으면 한다. 이 사업은 노인문제에 관심을 갖고있는 기업들을 끌어들일 수도있으며 주택공급업자에게 책임제로 할당하는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그리고 정부는 무의탁노인과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은 노인들을 수용할 시설들을 지역별, 인구비례별로 건설하는 방법도 강구해야 할것이다. 노인들은 {아름다운 노후}를 보낼 권리가 있으며 사회는 그들의 노후를 안락하게 해줄 의무가 있다. 추석날 선대의 무덤앞에 서서 구순노모를 죽인 칠순노인의 아득함을 생각해 본다. 그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 터인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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