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재소설-타인의 시간(46)

밥보다는 오히려 잠이 더 좋았던 시절, 차라리 이 세상이 영원한 밤이었으면,아니 삼분의 일은 낮이고 삼분의 이는 밤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동경했던, 그런 시절이 분명 내게도 있었다.작년 가을이었다. 한번은 언니가 내 바지를 망가뜨려 놓은 일이 있었다.내가 제일 아끼는 바지였는데 언니도 그 바지가 마음에 들었던지 자꾸 입어보자고 추근거렸다. 내가 안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는데도 내가 샤워하고 돌아와 보니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엉덩이 부분의 실밥을 한뼘 가령이나무참히 타 놓았다.얼마나 신경질이 나던지.그런데 더욱 얄미운 것은 일을 저질러 놓은 언니의 태도였다. 미안한 기색은간곳없고 아주 낙심천만의 얼굴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앉아 있었다. 그 꼴을보니 더욱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는 바지를 침대 위로 집어던지며 악을 써댔다.

[내가 입지 말랬잖아. 난 몰라, 언니가 물어내]

그래도 언니는 벙긋하지 않았다. 꼭 실연한 여자 같았다. 이윽고 거울에서눈을 뗀 언니가 말했다.

[승혜야, 내가 그렇게 뚱뚱해 보이니? 난 여태 너처럼 날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어이가 없어 풀쩍 웃었다.

[언니, 주제 파악을 좀 해. 난 열일곱이고 언니는 스물다섯이야. 십대와 이십대가 같아?]

나는 하마터면 처녀도 아니면서, 하고 콕 쥐어박으려다 참았다.[그래도 넌 다 컸잖니. 가슴은 오히려 나보다 더 크고. 정진씨가 그 동안얼마나 실망했을까]

[언니가 뚱뚱한 거 이제 알았어? 둔하기는... 하여튼 물어내. 똑같은 걸루]언니는 기어이 힙을 맞추어 보자고 했다. 현관 벽에 걸린 대형 거울을 끙끙거리며 가져와 한사코 나를 그 앞에 세웠다. 그제야 자신의 힙이 표나게 펑퍼짐함을 확인한 언니가 더욱 절망감에 사로잡혀 말했다.

[한 달쯤 굶으면 가능하겠니?]

[한 달쯤 안 자면 가능할 거야]

나는 속이 상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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