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타인의 시간(56)

나는 까닭없이 자꾸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 일이 있고 난 뒤로 나의마음은 나쁜 쪽으로만 발달해 갔다. 어디든 연락이 닿을 만한 데로 전화라도해보고 싶지만 얼른 떠오르는 전화 번호가 없다. 큰오빠의 책상을 뒤져보면혹시 알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선뜻 내키지 않았다. 큰오빠의 방은 항상담배 냄새가 진득이 배어 있어 방문을 여는 순간부터 코부터 막아야 한다. 그리고 성질이 얼마나 괴팍하고 괄괄하던지 잘못 쑤석거렸다간 수첩도 못 찾고된통 꾸지람 듣기 십상이었다.큰오빠는 왜 그럴까. 며칠 전에도 큰오빠는 아버지와 티격태격 실랑이를 벌였다. 벌겋게 술까지 먹은 큰오빠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버지에게 우격으로따지기 시작했다.

[아버지, 말씀해 보세요. 아버지는 그 이유를 알고 계실 게 아닙니까?]참으로 이상한 건 아버지의 태도다.그렇게 과거속을 헤매다가도 큰오빠만 앞에 있으면 온전한 사람같이 목소리가 야무지고 눈에 불꽃을 튀긴다. 그럴 땐오기도 힘이 되는 걸까.

[늬 어미는 자살해서 죽은 게 아니다]

처음 아버지의 목소리는 낮고 점잖았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머리맡에 엄연히 수면제 병이 있었고, 또 약을드셨고 그렇게 버젓이 유서까지 남겨두셨는데도요. 그럼 누가 죽이기라도 했단 말씀이세요? 아버지는 뭔가를 숨기고 계십니다]

큰오빠의 언성이 높아졌다. 집안은 팽팽히 부푼 고무풍선 같았다. 작은오빠와 나는 문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었고, 언니는 내 책상 앞에서 심각한 얼굴로이마를 짚고 앉아 있었다. 나의 가슴은 곧 무엇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조바심때문에 연방 두근거리고 있었다.

다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늬 어미는 그전부터 죽음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극심한 죽음의 공포증에 시달려 왔다.이튿날 날이 밝고 눈이 터져야 오늘도 살았구나 하고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유서는 그전부터 써 두고 있었다][그럼 약은 왜 드셨습니까?]

큰오빠가 천천히, 그러나 쫀쫀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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