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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재소설-타인의 시간(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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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사실을 언니의 일기를 보고 알았다. 어느날 나는 언니가 내 일기장을 훔쳐본 앙갚음으로 언니의 일기를 훔쳐보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좀 유별나서 남이 보아서는 안되는 편지나 일기장 같은 것들은 철저히보관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책상 서랍에 넣어 항상 자물쇠로 채워두는것은 물론이고 그것도 미심쩍어서 혹시 누가 보면 금세 식별할 수 있도록 그것들을 넣어 둔 위치나 모양, 각도 등을 정확히 기억해 두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일기를 쓰려고 일기장을 꺼내노라니 어떻게 자물쇠를 땄는지 손 댄 흔적이 역력했다. 전날 내가 넣고 잠갔을 때는 서랍 맨 밑바닥에 머리가 손잡이부분으로 오게 뒤집어 약 15도 각도로 넣어두었는데 그 각도와 모양새가 달라져 있었다. 아마 언니도 몹시 놀랐을 것이다. 언니 딴에는 완전범죄를 노렸을테지만 결코 나의 완벽성은 뛰어넘을 수 없었다. 내가 발끈했는 건 물론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금방 언니의 소행임을 알아차렸다.어머니는 그런 점에서는 존경받을만했다. 평소 어머니는 우리의 인격을 아주존중해 주셨는데 우리가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상소리로 꾸중을 하시거나매를 대는 일이 없었고 우리의 허락없이 책상을 뒤지거나 일기장 따위를 훔쳐보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셨다. 설령 우리 앞으로 못마땅한 편지나 소포가와도 일단 우리 손에 넘겨 주신 후 자신이 보는 앞에서 읽히거나 뜯게 하셨다.

나는 곧 언니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처음 언니는 아니라고 길길이 뛰었지만나는 기어이 언니의 자백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나는 그만 허탈해졌고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꼭 누군가에게 억울하게 순결을 빼앗긴 것 같은 그런기분이었다. 나는 그날밤 당장 보복을 감행했다. 언니가 잠든 틈을 타 갓등을 올린 나는 언니의 책상 서랍속을 찬찬히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언니는 참 허점이 많은 여자였다. 일기장을 넣어둔 서랍이 잠겨 있지도 않았고그것도 보란 듯이 맨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나는 속으로 끌끌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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