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 타인의 시간 (95) 도도의 새벽 ⑫

작은오빠는 이층에 있었다. 주희가 자주 뛰놀았던 앞뜰의 벽을 등지고 웅크려 있었다. 두 무릎 사이로 머리를 깊이 떨구고 기척없이 앉아 있어서 꼭 술김에 깜빡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작은오빠가 그런 자세로 줄곧 울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다가갔을 때 작은오빠는 간헐적으로 콧물을 들이마시고 있었다."자지 않고 왜 올라왔어?"

작은오빠가 머쓱했던지 나를 나무라듯 말했다. 오빠의 얼굴은 술기운이 가셔있었다. 그 눈물 속으로 붉었던 취기가 다 씻겨 내려간 것일까. 뇌란 달빛을흠씬 받고 있는 오빠의 얼굴은 차라리 해쓱해 보일 정도였다."자꾸 정신이 맑아져"

나는 변명하듯 중얼거리며 오빠 곁에 쭈그려 앉았다. 딱딱한 시멘트 바닥은밤이슬에 젖고 있었고 간간이 스치는 밤 바람이 깔깔했지만 가슴이 공뜬 탓인지 추운 줄을 몰랐다. 빤히 건너다보이는 소영의 집은 깊은 잠 속에 빠져있었다.

그렇게 앉아 있자니 불현듯 주희 생각이 났다. 가끔 내가 무얼 들고 올라갈때면 주희는 이쯤에서 쭈그려 앉아 있다가 곧잘 엄마를 부르러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곤 했다. 금방이라도 잠결에 일어난 주희가 창문을 열고 텃세를 부릴 것만 같아 나는 자꾸 뒤가 돌아다보였다.

주희가 보고 싶었다. 해맑은 웃음을 쏟으면 반짝이는 눈이 보석같던 주희의모습이 아슴푸레 떠올랐다. 그러나 이제 그 주희도 영영 보지 못하리란 예감이 들었다. 우리 집 비밀을 알면 주희 엄만들 날 반길 턱이 없었다."너는 믿어지니?"

작은오빠가 가만히 물었다. 그건 물음이라기보다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에 가까웠다. 나는 그런 작은오빠의 기분을 넉넉히 짐작할 수있었다.

"나도 오빠 마음과 같애.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야. 하지만 큰오빠가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잖아."

작은오빠가 고개를 떨군 채로 끄덕거렸다. 나는 작은오빠가 지금도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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