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 타인의 시간(102) 도도의 새벽 19

"얘들아, 아직 안깼니? 아버지께서 산책 나가자고 밖에서 기다리신다"어머니의 낭랑한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어머니의 재우침에 퍼뜩 의식은 열렸으나 눈이떠지지 않았다."아휴, 저소리. 내미쳐. 승혜야, 너나 빨리나가. 난 안되겠어"돌아누운 언니가 잠꼬대처럼 투덜거리며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쿡 쥐어박고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야무지게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엄마, 오늘은 못 나가겠다고 아빠께 말씀드려. 어젯밤 늦게까지 일기 썼단말야"

나는 이불속에서 중얼거렸다. 문밖에서 큰 오빠와 작은 오빠의 기척도 들리고 아버지의 허허로운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만간절할뿐 몸이 남의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아버지, 우리끼리만 나가요. 여자들은 할 수 없단 말이야"어느 오빤가의 짜증이 귀청을 파고 있었다.

"그럴까. 하긴 한창 잠이 많을때긴 하지"

"가만있어 보세요. 자꾸 그러면 버릇돼서 안돼요. 요새 야들이 왜 이모양인지 모르겠다"

어머니의 꼬장꼬장한 목소리를 들은 언니가 다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승혜야, 제발 빈다. 빨리 좀 나가줘 응?"

"승희야, 승혜야, 정말 못 일어나겠니. 열 셀때까지 안 나오면 문 열테야"다시 어머니가 다그치고 있었다.

"엄마, 딱 오분만 더 있다가 일어날게. 문 열지마, 문 열면 엄마도 크게 실망할거야. 우린 지금 다 벗고 있어"

내가 거짓말을 하며 애원했다.

"아휴, 씨팔. 우리 집은 왜 이런지 몰라. 일요일이라고 마음놓고 잠을 잘수가 있나. 시집을 가든지 도망을 가든지 뭔 수를 내야지"

언니가 노골적으로 투덜댔다. 여덟, 아홉…. 엄마, 잠깐만. 문이 펄쩍 열렸다.

그 바람에 나의 눈도 떠졌다. 꿈이었다. 꿈 치고는 너무나 선연한 어머니의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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