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해설은 11월10일~12월5일 비망록 내용 특히 11월19일자 내용중 우라늄에관한 것입니다.▲북한지역의 원자폭탄 개발 시설과 소련
한국문제가 유엔으로 이관된 이후 한국문제에 대한 설전의 장은 유엔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일련의 논란 끝에 유엔총회 정치위원회는 11월5일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거와 이를 위한 한국임시위원단 설치를 규정한 미국측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유엔총회의 본회의 역시 이상과 같은 안을 11월14일통과시켰다.
유엔에서의 이러한 사태 진전에 직면하여 북한의 소당국이 모색했던 대응은조선 임시헌법을 제정하는 것이었다. 임시헌법의 제정은 곧 헌법에 규정된절차에 따라 선거를 실시하여 인민회의를 구성하고 그 바탕 위에서 정부를수립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레베데프 비망록 11월10, 11, 18일자 내용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한국문제에 대한 이같은 유엔에서의 진척 상황에대응한 북한측의 조치, 특히 임시헌법 제정에 관한 것들이다.한편, 19일자 비망록 내용중 소련 권력층 내부의 실권자인 베리야에게 보내는 우라늄에 대한 암호전문은 유독 우리의 관심을 끈다. 이와관련, 당시의한국문제를 깊이 연구한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Ⅱ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즉 일제는 전쟁 말기 북한지역에서 원자폭탄을 개발하고자 했다는 것이다.그의 주장에 따르면, 일제가 북한지역, 특히 흥남의 대규모 화학공장들에 원폭 개발 시설을 갖춘 것은 연합국의 집중된 폭격을 피할 수 있고, 원폭 개발에 필요한 충분한 전기량을 확보할 수 있으며, 원폭 개발에 필요한 원료를손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일제는 북한지역에서 채취할 수 있는 '모나자이트'(monazite)라는 검은 모래를 처리하여 그 속에 포함된 소량의 방사성 물질로 토륨을 추출, 이 토륨을 이용하여 원폭을 개발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패망으로 흥남의 원폭 개발 시설과 북한지역의 모나자이트 광산은 소련군에 의해 장악되었고, 소련군은 1946년 이 시설들과 관련 노동자들을 소련으로 철거시켰다. 북한지역에서 채굴되는 모나자이트 또한 이후에도 계속 소련으로 보내졌다 한다.
1949년 소련은 원폭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미국에 뒤이어 두번째로 원폭보유국이 되었다. 이와관련, 커밍스 교수는 위에서 언급한 사실들을 지적, 소련의 원폭 개발이 부분적으로는 일제의 이러한 시설에 힘입은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그는 중국공산군에 의한 중국 본토의 석권과 더불어 소련의 원폭개발이 북한의 김일성을 고무시켰다고 보고 있다. 더구나 그것은 소련이 그원폭 개발에 있어 일제가 북한지역내에 남겨놓은 시설과 북한에서 생산되는모나자이트를 이용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결국 북한도 한몫을 거든 소련의 원폭 개발로 김일성은 고무되었고, 바로 이 고무는 김일성으로 하여금 남침을 결정하도록 한 한 요소로 작용했으리라는 것이다.
정해구(한국정치연구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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