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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반군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공산화기치 '킬링필트'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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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가 부른 전쟁으로 얼마나 인간이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 예가 바로 캄보디아 내전이다. 중립에서 민주로, 다시 공산으로 그리고 다른 노선의 공산으로…. 이데올로기 변화에 맞춰 전체인구 7백만명의 반에 해당하는 3백50만명이 단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목숨을 잃어야 했다.캄보디아는 크메르족만으로 구성된 단일민족인 동시에 불교라는 단일종교로 이뤄진 통일국가. 캄보디아도 한때 인도차이나반도의 양대 강국 베트남과태국의 틈바구니에서도 앙코르와트라는 인류적 유산을 건설할 정도로 강성한세력을 과시했던 나라였다. 그러나 이 나라도 서구 제국주의가 뿌리고 간 이데올로기에는 어쩔수 없는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75년 4월부터 4년이 채 못되는 기간동안 폴 포트가 이끄는 공산 크메르 루주 정권이 학살한 양민의 숫자는 공식적인 집계만 3백31만 이상. 단지 순수공산정권 수립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들은 현재 캄보디아 북부와 태국 국경 사이에 거점을 둔 약 5천명 정도의 게릴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존재는 여전히 국민들에게 절대적 공포의 대상이다.프랑스어로 '붉은 크메르'라는 뜻의 크메르 루주는 67년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폴 포트, 키우 삼판, 이엥 사리 3인방이 주축이 돼 결성한 급진공산혁명단체. 70년 미국이 배후조종한 론 놀이 우익쿠데타에 성공해 시아누크의 중도정권을 몰아냈으나, 계속되는 실정을 거듭해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크메르 루주는 이 기세를 몰아 75년 4월 캄보디아 공산화를 이룬 것이다.

최근 자신의 휘하병사와 함께 정부군에 투항한 전크메르루주 980사단 이트샴사령관의 말에 의하면 크메르 루주 게릴라들은 지난해 10월에서 12월 사이수도 프놈펜 북부 3백20㎞에 위치한 오다르 미안체이주 안롱 벵 지역에서 2천여명, 프놈펜 북서부 2백60㎞의 시엠 리아프주 3개 마을에서 3백여명의 민간인을 처형했다고 폭로했다.

이러한 대국민 만행에도 불구하고 아직 크메르 루주가 소멸되지 않고 있는이유는 캄보디아인들의 반베트남 감정을 교묘히 이용한 결과. 79년 베트남침공으로 친중국계 공산정권인 자신들이 밀려나고 친베트남계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크메르 루주는 이제까지 학살을 자행해 오던 태도를 돌연 바꿔 반베트남 투쟁으로 대선회를 했다. 노로돔 시아누크가 이끄는 중립주의자 및 손산의 민주주의 세력과도 연계, 민주캄보디아연합정부(CGDK)를 수립한 것이다.

베트남군의 위세에 눌려 와해 지경까지 이르렀던 크메르 루주는 냉전종식과 그에 이은 89년 베트남의 완전 철군으로 인해 다시금 세력을 회복했다.그해 11월 크메르 루주는 루비광산으로 유명한 캄보디아 북서부 파일린을 점령, 세력확장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92년 파리평화협정으로캄보디아 총선결정이 내려져 친베트남계 훈센내각과 다른 반군세력들이 총선참여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크메르 루주 만큼은 이에 반대, 계속적인게릴라 투쟁을 벌이고 있다.

태국과의 국경지대를 통한 원목과 고무, 루비 등의 밀무역으로 상당한 군비를 보유하고 있는 크메르 루주는 스웨덴제 84㎜ 카를 구스타프, 프랑스제89㎜ LRAC, 독일제 67㎜ 암브루스트와 같은 고가의 최신 대전차미사일을 구입, 정부군을 괴롭히고 있다.

93년9월 캄보디아에서 가장 폭넓은 국민의 신임을 받고 있는 시아누크가비록 입헌군주제하 이긴 하지만 국왕으로 등극하고 난뒤 캄보디아 정국은 상당한 안정을 보이고 있다. 그에 따라 국민들의 마음도 크메르 루주에서 계속멀어지고 있고 크메르 루주 병사들 조차도 잇따라 투항해 세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비록 일선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아직 '킬링 필드'의 주역 폴 포트가 건재한 이상, 크메르 루주가 국민의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결국에는 단순한 무장테러단체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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