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복50년-나는 증언한다-(6)종전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폭격이 좀 잠잠해지자 주인놈은 부서진 위안소를 다시 얼기설기 지었다.지옥같은 생활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엔 덜컥 임질에 걸렸다. 일본군들이위안소를 찾을때 삿쿠(콘돔)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훗날 들었지만 당시엔삿쿠가 뭔지, 그런게 있는지조차도 몰랐다. 그 위안소에선 정기검진 같은 것도 없었다.내가 임질에 걸리자 주인놈은 불그스름한 색깔의 독한 606호 주사를 놔주었다. 하지만 계속 군인들을 상대하도록 강요당했기 때문에 도무지 낫지를않았다. 주인놈으로부터 주사를 맞아가며 계속 군인들을 받았다. 그 병은 이후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어느날 하시가와가 와서 곧 출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투기 한대에 두명씩 타고 미군의 배나 기지를 공격한다며 자신도 죽을것이라고 했다. 자기사진이랑 쓰던 비누를 주며 "도시코, 죽지마라. 내가 죽어 널 엄마품에 안기도록 해줄께.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가면 꼭 시집가라"고 당부했다.그는 '용감하게 이륙한다. 신죽(신죽)을 떠나서...'로 시작되는 시 한수도적어주었는데 아마도 위안소가 있었던 그곳 지명이 신죽이 아닌가싶다.전쟁말기라 부쩍 공습이 심해졌다. 하루에도 몇차례씩 대피해야 했다. 먹을것이 없어 남의 밭 사탕수수를 잘라먹기도 했고 그러다 들켜 두들겨 맞기도 했다.

어느날 사방이 폭탄터지는 소리, 따발총소리들로 천지개벽이라도 하는듯요란했다.무너진 위안소 한쪽 구석에서 오들오들 떨기를 얼마나 했을까, 나보다 연상인 위안부 한명이 내게 "전쟁이 끝난 모양이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듣는 조선말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한마디도 조선말을 쓸 수가 없었는데그랬다간 주인놈에게 죽도록 얻어맞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것없이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그 언니는 "어떻게든지 꼭 살아서 고향으로돌아가자"고 말했다. 조선에서 함께 끌려온 다섯여자중 네명이 살아남았다.주인놈과 다른여자들은 어떻게 됐는지 보이지 않았다.

밖은 사람들의 고함소리 등으로 난리법석이었다. 살며시 내다보니 남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어떤 남자는 목잘린 사람의 머리를칼끝에 꽂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기절초풍한 우리는 담요를 덮어쓰고 구석에숨어 후들후들 몸을 떨었다.

그러자 누군가 "배타러 가자"고 말했다.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지 기억은안나지만 여하튼 부두에 도착하니 큰 창고같은 곳에 사람들이 와글거렸다.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봐도 놀란다더니 자칫하면 또다시 어디론가 끌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난 나는 얼굴까지 담요를 덮어쓴 채 한쪽구석에 웅크려 있었다. 누군가 주먹밥을 주는데 보니 바구미가 새카맣게 달라붙어 있었다. 워낙 배가 고프다보니 바구미를 떼내고 먹었다. 모두가 배를 탈일념으로 창고를 떠나지 못해 그 자리에서 먹고 싸는 생활을 계속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