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강택민'과 '장쩌민'

나라전체가 유례없는 외환위기를 맞아 IMF구제금융으로 정신이 없던 지난 연말과 연초사이. 대부분의 한국신문에서는 '강택민'주석,'이붕'총리등 우리눈에 익은 중국지도층의 이름이 일제히 사라졌다. 대신 이들의 이름을 중국현지 발음대로 읽은 '장쩌민'주석,'리펑'총리등 조금은 생소하고 발음도 어려운 새로운 인명이 등장했다. '북경','남경'등 지명도 마찬가지. '베이징','난징'등이 빈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우리나라에는 인명,지명등 외국의 고유명사는 현지음 그대로 표기한다는 외래어표기법(86년 문교부고시)규정이 있다. 여기에는 중국과 일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며 필요할 경우 한자를 병기할수도 있다.

이번 중국 고유명사 표기체계 변경은 국제화시대를 맞아 각 신문사가 이 대원칙을 뒤늦게나마 받아들인 결과다. 지난 76년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보도용어 통일화 작업을 시작한뒤 무려 22년만의일이다.

그간 대부분의 신문은 일본의 고유명사는 현지음가 그대로 표기한 반면 중국의 고유명사는 우리식대로 읽어 표기해왔다. 반일감정이 적지않은 우리나라에서 '하시모토'총리등 일본사람 이름은일본발음 그대로 사용해온 반면 한세기전 사대사상이 문제되기도 했던 중국의 고유명사는 우리음가대로 적어온 아이러니가 계속돼 온것이다.

외국의 고유명사 표기는 언어의 자존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다. 외국사람의 이름과 지명을 현지 발음대로 표기하는것은 국제화시대의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과 일본의 고유명사발음에 '이중 기준'을 적용해왔다.

이는 지난날 초중고 교과서에서 별다른 생각없이 일본고유명사는 일본음가대로, 중국고유명사는우리식 발음대로 표기해온 결과에 기인한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도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다.일본의 경우에는 일제의 지배를 받은 우리선배 세대들이 일본어에 익숙한 때문이며 또 중국의 경우에는 옌볜(延邊)등 일부 발음에서 복모음이 중첩돼 우리발음 체계에 익숙지않은 때문이었다. 또이를 보수성이 강한 신문이 답습해온것도 이중기준 고착화에 한몫을 한것으로 분석된다.지난 10일 진도 6.2의 강진이 발생한 중국 허베이(河北)성의 경우 신문기사중 괄호속 한자표기가없으면 30대이상 국민은 어느지역인지 종잡을수없다. 그러나 '하북'성을 '허베이'성으로 배워온 젊은층은 그렇지않다. 우리의 초중고 교과서에서는 이미 10여년전부터 중국인명과 지명을 현지음가대로 표기하고있다.

'장쩌민'주석을 '강택민','허베이'를 '하북'이라고 생각하면 영자지등 외국신문은 읽을수없다. 중국인은 물론 제3국인과의 대화에서도 중국 인명이나 지명이 나오는 대화는 할수없다. 알파벳은 '장쩌민'으로만 표기하기 때문이다.

아는데도 말할수없다면 문법위주의 교육때문에 외국사람과 간단한 일상회화 한마디 할수없게 만든 영어교육과 다를바 없다. 국제화시대에 역행해왔다는 자성을 하지않을수없다.각신문의 표기체계 변경으로 한자발음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의 불편은 상당기간 지속될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한자발음에 익숙해있기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빠른시일내 익숙해지리라 본다. 이에따라 대부분의 신문은 현지어 발음이 어느정도 익숙해질때까지 괄호속에 한자어표기를 병행할 계획이다.

우리 외래어표기법은 중국의 경우에도 '과거'(통상 1911년 신해혁명)에 활동한 사람의 이름과 현재 존재하지않는 지명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한다고 규정하고있다. 따라서 공자,두보,이백,소동파,양귀비등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고대사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은 종전처럼 표기된다.그러나 이같은 중국고유명사 표기의 이원화는 우리국어학계가 풀어나가야할 숙제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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