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열린 중국 닫힌 중국-불타는 노을

'석양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어라, 부드러운 향기가 번져나오네, 석양은 늦게 피어나는 꽃, 석양은 오래 묵은 술, 석양은 늦게 찾아온 사랑, 석양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정, 하많은 그 사랑 불타는노을이 되었네'

매일 아침 8시30분, 중국중앙텔레비전 1채널의 화면에서는 주홍빛 노을을 배경으로 천천히 태극권을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펼쳐지면서 이 노래가 시그널뮤직으로 깔린다. 이어 거리에서 교통질서를 바로잡거나 노인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할머니들, 경극(京劇)을 지도하는 멋장이 할아버지등 노인들의 활기찬 삶의 모습들이 화면 가득 담겨져 나온다.

한낮 하늘높이 떠올라 따가운 햇살을 쏘아대던 태양빛이 하루를 마무리하고 마침내 뉘엿뉘엿 사그라져 가는 모습. 조어의 천재 중국인들은 노인을 '시양홍(夕陽紅)'이라는 애칭으로 미화시켜 부르기를 즐긴다.

경제발전과 함께 중국도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관련통계에 의하면 96년말 60세이상 노인은1억1천여만명으로 전체인구의 9.5%를 차지,'10% 고령화사회'에 바짝 다가섰다. 2천년엔 1억3천여만명, 2천40년엔 3억7천4백여만명으로 증가, 중국 전체인구의 24.8%에 달해 4명중 1명은 노인이될 전망이다.

지금의 노인들은 헐벗고 굶주리는 간고한 풍상속에서 항일운동에 몸바쳤던 세대들이자 중화인민공화국 건설의 공헌자들로서 그들의 풍부한 경륜은 21세기 대중화(大中華)로의 도약을 노리는 중국사회에서 귀한 자산(寶貴財富)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항일운동과 신중국건설에 참여한 라오깐뿌(老幹部), 즉 이·퇴직(離退職) 간부출신 노인들에겐 재취업기회를 비롯 연금 등 다양한 복지혜택이 주어지고 있다. 전국 각처에는 라오깐뿌용의 숙박시설이 있어 여행때 저렴한 경비로 좋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기도 하다. 쟝수(江蘇)성 꽝화(光化)시의 경우 93년부터는 매년 시가 선정하는 10대 모범공산당원중 1명은 반드시 퇴직한 라오퉁즈(老同志)로 뽑는 등다각도에서 우대 정책을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노인들은 상당히 자신들의 노후를 즐기는 모습들이다. 이른 새벽이면 공원이나거리 곳곳에서 느릿느릿 태극권을 연마하거나 운동인지 춤인지 모를 동작을 하는 노인들이 많다.새를 특히 좋아하여 저마다 새조롱을 들고 공원에 나와 나뭇가지에 걸어놓는데 새는 새들끼리 한데 모여 지저귀고 노인들은 노인들대로 기공을 하거나 담소를 즐긴다. 양손에 새조롱을 들고 팔을 리드미컬하게 흔들며 걷기운동을 하는 노인들도 많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저녁마다 양거얼(秧歌兒:원래 북방 농촌지역 민간가무의 하나이지만 현재는 전국적으로 퍼져있음) 한마당이 펼쳐졌다. 그것도 5백m정도를 사이에 두고 두군데나 경쟁하듯이. 양쪽 모두 20~30명씩 모여드는데 더러 중년부인들도 끼어있지만 대개는 60~70대의 할머니들로서 양손에 빨간부채나 파란부채를 들고 두줄로 서서 흥겹게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춘다. 할아버지 5~6명이 주축을 이룬 악대는 북과 나팔 등 악기로 신나게 흥을 돋운다.

양거얼이 시작되면 이슬람풍의 양고기꼬치인 양러우촨(羊肉串) 장수들이 숯불을 피워대고 저녁식사를 끝낸 동네사람들이 어슬렁거리며 모여들어 자기아내나 어머니, 이웃부인들의 춤맵시를 구경한다. 이같은 노인들의 양거얼은 중국의 거리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젊은이들이밤거리를 메우는 자본주의사회와는 달리 사회주의국가 중국의 밤은 노인들 차지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