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젊은 소설가 아내의 망부가

지난해 4월22일 90년대의 가장 촉망받는 소설가로 꼽히던 김소진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서른넷의 젊은 나이였다. 오늘(22일)은 그의 1주기. 정오에 그의 무덤이 있는 경기도 용인 공원묘지에서 그의 아내인 함정임이 두권의 책을 그에게 바쳤다. 소설가 아내의 눈물겨운 추모제였다. 한 권은 고인의 산문집 '아버지의 미소'(솔출판사 펴냄), 또 한권은 함씨가 남편이 사망한 후 쓴 소설들을 모은 '동행'(강 펴냄).

"친구들은 우리가 둥지를 튼 일산 쪽에 대고 '소진이와 정임이가 살맛나게 살고 있다네' 노래를부르며 짖궂게 쫓아왔는데, 노랫소리가 그치기도 전에 당신은 우리의 만남이 운명이 아니라 환각이라는 듯이 내 곁에서 사라져서는 아직껏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요"

함씨는 '아버지의 미소'의 서문에서 망부(亡夫)에 대해 애틋한 정을 토해내고 있다. 그들은 93년에 결혼, 채 4년도 같이하지 못한채 이별했다. 5섯짜리 아들 태영만 그녀곁에 남았다.'동행'의 표제작에서 함정임은 지난해 봄 남편 김소진에게 병마가 들이닥쳐 투병생활을 시작한때부터 '한마리 새'로 '어둔 허공 속으로 날아'갈 때까지 두달여 동안 두 사람이 나눈 '어둠 속의대화'를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돌이켜 보고 있다. 이 소설속에서 화자는 두번째 아이를 가졌으나남편이 죽기전 뱃속 아이가 먼저 죽는다. 이 작품 제목이 왜 '동행'인지를 암시하고 있는 작품 말미에서 화자는 이 '태어나지 못한 불쌍한 아가'에게 "아빠가 떠날 낯설고 외로운 길, 길동무나 같이 하면 나 또한 태영이와 함께 평생 동무하며 살아갈 것"이라며 용서를 구하고 있어 읽는 이의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아버지의 미소'는 김소진이 서울대 영문과 재학시절인 84년부터 세상을 뜨기직전까지 쓴 산문들을 엮은 것으로 습작기의 소설과 시를 비롯해 산문, 책글, 인물글, 대담글, 그리고 사진으로 보는연보 등으로 꾸며졌다.

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공모에 '쥐잡기'가 당선되어 등단한 김소진은 감각적인 문체의 여느 90년대 작가들과는 달리 사라져가는 우리말들을 소설공간에 되살려 높으면서 탄탄한 리얼리즘의 세계를 구축했던 드문 작가. 첫 소설집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부터 '고아떤 뺑덕어멈', '장석조네사람들', '자전거도둑', '양파'를 거쳐 지난해 나온 유고집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 이르기까지 장편소설과 소설집들에서 그는 서울 미아리 달동네 등을 무대로 세계의 폭력성에 짓눌린 존재, 남루한 삶을 힘겹게 견뎌내는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김소진보다 1년 일찍 90년에 등단한 함정임은 첫 소설집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과 두번째 소설집 '밤은 말한다'에서 어두운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상처와 그 상처의 치유과정을 다룬 작품들을 많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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