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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백합나무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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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많은 해엔 느티나무 새잎도 크기부터 다르다. 봄볕조차 무거워 제풀에 사운대는 연록의 넉넉함이, 이제 여름 햇살을 받아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시골길을 지나다 마을 앞 느티 그늘에 앉아 장기라도 두는 노인을 보면, 세상 모든 평화가 이 텅빈 풍요에서 비롯됨을알겠다.

한 세상 착하게 사는 것이 어디 느티뿐이랴. 밤낮으로 매연에 시달리는 가로수도 봄이면 찰랑찰랑 물소리를 흘리고, 겨울에는 눈을 이고 서는 순천(順天)의 길에서 벗어나는 일 없다.곧은 나무는 목재를 주고 굽은 나무는 그늘을 준다고 한 옛 스승의 가르침을 사람들만 잊고사는 것 아닌가.

종류에 따라, 혹은 개체에 따라 나무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듯, 사람들도 다 나름대로 개성이 있다. 여러 개성이 모여 세상을 풍요롭게 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예비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현대사회는 점점 더 획일화를 요구하고 컴퓨터가 움직이는 속도만큼 가파르게 앞으로만 달려가도록 만든다.

최근 은행나무가 매연에 강하다 하니 앞뒤 가리지 않고 가로수로 심는다. 백합나무는 그것이 슬프다. 은사시나무 거리가 사라지고 하늘 찌르던 포플러가 베어지는 것을 백합나무도보았을 터. 갈수록 자연과 멀어지는 도시에 가로수 한 그루라도 더 다양한 종을 심어야, 모든 것을 제 기준에만 맞추는 인간의 오만이 조금이라도 녹아내리지 않겠는가.

잎자루가 긴 황록색 잎이 햇살에 살랑이며 반짝이는 백합나무는 세상이사 그러거나 말거나제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백합나무의 슬픔을 말하는게 오히려 한 인간의 편견에 불과한지 모르겠다. 김양헌〈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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