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상을 물리자마자 방문을 걸어잠그고 컴퓨터를 켠다. 곧바로 인터넷 음란 사이트에 접속하면 딴세상이다. 아내도 아이들도 그곳엔 없다. 마우스를 누르기만 하면 푸른 눈, 금발의미녀가 나를 위해 옷을 벗는다. 쌓여가는 담배꽁초 위로 또다시 새벽이 뿌옇게 밝아온다"〈1998년 어느날 갑남(甲男)의 일기〉
소설 속의 일만은 아니다. 인터넷의 음란사이트에 빠져 연일 밤을 지새는 이들은 이미 우리주변에도 많다.
인터넷은 흔히 '정보의 바다'라고 불리지만 때론 '쓰레기 집하장'으로도 불린다. 특히 음란물을 죄악시하는 현실 속에서 인터넷은 '철저한 방역이 필요한 병균투성이'이다.검찰은 최근 PC통신 성인정보 제공자들에게 철퇴를 가한뒤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까지 수사를 확대했다. PC통신 수사때 혼쭐이 난 관련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개인홈페이지를 링크해주는 ISP(정보서비스업체)들은 고객 홈페이지에 대한 모니터링을 대폭 강화했다. 심마니,야후 코리아 등 검색업체들도 접속 홈페이지에 대해 심의강화, 등록거부 등의 조치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네티즌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PC통신의 성인정보, 국내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모조리 '퇴출'시킨다 하더라도 무한정의 음란물이 허용되는 해외 음란 인터넷사이트는 어떻게할 것인가. 오히려 역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신분확인 등 나름대로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제공되던 PC통신의 성인정보나 간이 전시장수준의 개인 홈페이지를 단속함으로써 선의(?)의 이용자들을 인터넷 음란사이트로 이동시킨다는 주장도 강하다. 실제 검찰수사 발표이후 인터넷 검색엔진의 검색어 가운데 '섹스' '포르노' 등의 단어를 입력하는 건수가 전보다 10~20% 늘어났다고 관련업체는 밝혔다. 낙석(落石) 피하려 절벽으로 떠민 꼴이다.
음란 사이트는 최근 인터넷 학습의 교과서로 자리잡았다. 게임으로 컴퓨터에 흥미를 붙였듯음란물로 인터넷 실력을 늘려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사무실에서 테트리스를 하지 않는다. 대신 워드프로세서나 엑셀 등을 켜놓은채 부지런히 음란 사이트를 돌아다닌다. 마우스클릭 한번이면 상급자의 눈길은 간단히 피할 수 있다.
섹스와 관련된 얘기들은 공공연히, 급속도로 번지는 것이 특징이다. 인터넷 음란 사이트 정보도 마찬가지다. 10대든 20대든 30대든 그럴싸한 사이트를 찾으면 인터넷 도사라도 된 것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한다. 은밀함은 사회전체적으로 순식간에 공유되는 것이다.여기서 발전한 형태가 음란물 제작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음란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사진이나 동영상 자료들로 자신의 홈페이지를 장식, 타인의 방문을 유혹한다. 제작 의도에는 자기과시 뿐만 아니라 현실적 이유도 작용한다. 외국 음란 사이트 운영업체들이 지급하는 광고료 수입이다.
유명 음란 사이트 운영업체들은 방문객 수가 많은 개인 홈페이지 운영자에게 자사 배너광고를 게재토록 하고 클릭 수에 따라 일정액을 지급한다. 국내 기업의 배너광고로 월5만원 정도를 벌어온 한 홈페이지 운영자는 음란 사이트 배너광고를 넣은 후 월수입이 2백~3백달러로 열배 가까이 늘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자신의 수입을 늘리기 위해 홈페이지를 더 야하게꾸미고 소문내기에 분주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인터넷 섹스 사이트는 새로운 산업으로 자리잡으며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미국의 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인터넷 이용자의 20%가 정기적으로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하고 있으며 이들 사이트들의 지난해와 올해 매출규모는 각 5억2천만달러로 추산된다.
상황이 이럴진대 섣부른 단속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쉽게 예상할수 있다. 네티즌들은우선 모호하게 규정된 음란성의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영화, 비디오등은 아무렇게나 널려있는데 이보다 접근이 어려운 인터넷에만 칼을 휘두르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 단속규정이나 절차 등의 기준재정립도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하지만 인터넷상의 외설적이고 비상식적인 음란물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극히 당연한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네티즌들 스스로가 음란물에 대해 판단하고 합당한 취사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권력을 앞세운 외형적 단속에만 치우치다 보면 2002년 어느날 우리의 일기는 자칫 이렇게쓰일지 모른다.
"아내가 컴퓨터용 고글을 숨겼다. 한바탕 싸웠지만 일과는 그대로다. 방으로 돌아가 고글을끼고 글러브, 바이브레이터, 센서까지 온몸에 착용하면 준비끝. 스위치를 누르고 1천명이 넘는 버추얼섹스(Virtual Sex) 파트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불결하지 않고 거절하지 않으며 마음먹은 대로 카사노바도 되고 변강쇠도 된다. 최상의 선택에 오늘도 만족한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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