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갓난 아기의 눈망울

24일 아침 대구 북부경찰서 형사계. 초췌한 한 사내가 대기실 한켠에 고개를 수그린 채 앉아 있었고 옆에는 '공범'인 부인이 갓난아이를 업고 앉아있었다. 한창 단란한 생활을 꾸려야할 한 가족이 경찰서에서 날밤을 샌 것이다. 한달전 실직을 당한 뒤 별다른 생계수단이 없어 결국엔 고철을 훔쳐팔다 검거된 박모씨(31) 일가족.

1t 포터 화물차 한대가 전 재산인 박씨지만 그래도 지난 6월초까지는 이 차량으로 가스통을배달하던 한 가정의 엄연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실직 후엔 사정이 달라졌다. 아직 태어난지1백일도 안된 아들이 우유도 먹지못해 울어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야하는 무력한 '아빠'.전과 하나 없었던 박씨를 도둑질이라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들었다.

박씨는 인적이 드문 새벽시간에 침산동의 한 공장으로 가 고철을 훔쳐 팔기 시작했다. 박씨가 3차례에 걸쳐 훔친 고철은 고작 20만원 상당. 경찰에 검거된 24일엔 아이를 업은 아내를데리고 가 망을 보게했다. 불안감 때문이었다. 박씨는 경찰서에서 "아내와 아이에게까지 치욕스런 장면을 보게 했다"며 비통해했다.

경찰도 이들 부부의 사정을 감안해 부인은 불구속 입건하고 남편인 박씨에 대해서만 특수절도 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이 이를 기각했다.

북부서 담당형사는 "어쩔 수 없이 영장은 신청했으나 기각돼 오히려 다행이다"며 "더이상또다른 박씨가 생겨나지 말아야 할텐데…"하고 최근의 사회분위기를 우려했다.〈李宗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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