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가 정찬씨 첫 장편 '세상의 저녁' 내놔

소설가 정찬씨가 등단 15년만에 장편소설 '세상의 저녁'(문학동네 펴냄)을 냈다.83년에 등단한 정씨가 장편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 '기억의 강', '완전한 영혼', '아늑한 길' 등 소설집을 차례로 내온 그는 그동안의 역량을 총결집해 긴 호흡의 야심작을 마음먹고내놓았다.

'세상의 저녁'은 작가가 꾸준히 천착해온 신과 구원의 문제를 다룬 작품. 남녀의 사랑을 매개로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있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소설이 90년대 들어 거의 없어 그의 작품은 더욱 돋보인다. 정씨는 자칫 무거워지기 쉬운 주제를 쉽고 간결한 문체로 소화해 읽는 이에게 편안함을 안겨준다. 의문과 해답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소설구조는 독자가 저절로작품속에 빠져들게 한다.소설은 주인공 황인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가톨릭 신부의 사생아로 간질병을 앓고있는 인물. 불우한 성장기와 폐쇄적 성격을 가진 그는 이종사촌 별장에서 칩거하다 강혜경이라는 여자를 만나 부부가 된다.

그러나 그에게 불행은 끝없이 이어진다. 태어난 아기가 선천성 심장기형으로 죽자 충격을이기지 못하고 수도원으로 잠적하나 결국 극심한 자학에 시달리며 유리걸식하는 부랑자가되고 만다.

폐가에서 짐승처럼 살던 그는 어느날 찾아온 사내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희생제물로바치는 길만이 영원한 죄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깨닫는다. 신에 대한 증오가 자만에서 비롯됐음을 절감하며 그 실천에 나선 것. 소설은 정체를 숨긴채 병든노인을 보살피던 그가 눈쌓인 거리에서 조용히 죽어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작가는 고통의 끝까지 체험하는 황인후와 그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강혜경을 통해 사랑과희생, 기적과 구원의 연관성을 탐색해나간다.

문학평론가 김주연씨는 작품해설에서 "강혜경은 황인후의 눈물을 보고 그를 사랑하게 됐고그 사랑을 통해 자기자신도 발견하게 됐다"면서 "정씨의 작품은 인간과 신의 사랑과 눈물이라는 문제에 대한 깊은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씨는 지난 95년 중편 '슬픔의 노래'로 제26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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