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주 시장님께

시장(市長)님께서 5.18기념재단과 공동으로'5.18 민중항쟁의 날'을 주제로 한 '다큐 5.18'이라는 비디오 테이프를 제작하고 또 수천개의 테이프를 전국의 공공도서관과 대학 그리고 중고교에 까지 배포하느라 노고가 크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론(異論)과 반론(反論)의 유무를 떠나 20년전 광주사태 당시의 상황은 우리 모두의 비극이요 슬 픔이며 역사적 아픔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지난 역사의 현장과 진실을 기록하고 어제의 역사를 통해서 내일의 진전된 역사를 준비하는 것은 오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세대로서는 하나 의 소명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역사기록을 통해 '5.18정신을 함양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취지로 광주사태 당 시의 민중항쟁사를 다규멘터리로 재편집해 공급한 시장님의 그 뜻은 비록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타율적 결단이었다고는 해도 순수함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 긍정적 이해속에 서도 몇가지 고언(苦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젊은 대학생들과 어린 중고생들은 어제 그리고 지금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역 사를 어떤 식으로 가르치든 또 어떤 식으로 주입시키든 훗날 그들은 그들의 가치와 역사적 인식 에 의해 그들 나름의 주관대로 이해하고 평가할 것입니다. 이것은 검고 저것은 희다고 굳이 매김 하여 넘겨주지 않아도 그들은 스스로 흰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낼 것이며 또 그럴 수 있는 지혜와 능력과 역사적 안목을 길러줘야 할 책임또한 우리 어른들의 몫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의 관람의사 를 존중함이 없이 정규교과가 아닌 특활교재를 보기싫든 보고싶든 수업시간에 획일적이고 집체교 육 형태로 보여 주도록 공(公)조직을 통해 '요청'한 것은 교육적 배려가 부족했다는 고언을 드리는 것입니다.

도서관과 대학은 또 그렇다고 접어 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고교 아이들은 5.18 당시 태어나지 도 않은 세대들입니다. 그들에게 어느날 갑자기 교실의 AV모니터를 통해 군인들과 민중들간의 피비린내나는, 비극적'폭력'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 과연 교육적으로 꼭 필요한 것이냐는 것은 한 번쯤 교육계와 의논이라도 해봤어야 했다고 믿습니다.

지금 일선 중.고교의 교장선생님들은 '다큐 5.18'로 인한 고민이 적잖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보여줘야 할 것인가 아니면 무시해버릴 것인가, 솔직히 지금의 국민정부 아래서'광주'시장님의 활용요청과 교육청의 공문을 무시하고 교장선생님 개인의 교육적 소신대로 테이프를 서랍속에 쳐 넣어둘 '간큰 교장선생님'이 몇분이나 되리라고 보십니까 또 하나 광주시가 재편집한 이번'다큐…'작품은 역사오류의 위험을 안고 있을지도 모른 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5.18항쟁은 수백시간에 걸쳐 신군부의 권력 창출과 연계 된 정치상황, 민심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빚어낸 결코 짧지 않은 긴 역사의 순간들이었습니다. 그 것을 단 37분짜리 비디오에 담아 축소편집한 것이 과연 얼마만큼 광주사태의 역사적 진실과 의미 를 정확히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지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역사란 축소하면 할수록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오류와 왜곡이 생겨날 가능성이 커지게 마 련입니다. 시장님, 옥(玉)은 흙속에 덮어 묻어둔다고 해서 그 빛이 바래지지 않습니다. 광주 민주 항쟁의 높은 의기와 정신도 굳이 전국 학생들에게 집체교육형식으로 알리지 않아도 빛나는 역사 의 토막이었다면 역사속에서 저절로 빛나게 돼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수많은 교장선생님들을 곤 혹스럽게 만들기 보다는 차라리 '이런 좋은 비디오가 나왔으니 시간이 나거나 관심이 있는 학생 은 도서관이나 비디오가게서 빌려 보고 역사공부에 참고하라'고 고치시는 것이 좋으리라 봅니다. 역사교육도 좋은 일이지만 정서교육과 학생들의 자율적 선택권을 존중하는 가르침의 자세 또한 더 소중한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시장님의 의견은 어떠십니까

〈비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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