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과 군사독재로 대변되던 시절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쳤던 벽안의 이방인. 세계 인권 선언 50주년을 맞이한 대구시 중구 공평동의 엠네스티 한국 지부장 허창수 신부(독일명.헤르베르트 보타봐.57)의 감회는 남다르다.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유신이 선포됐죠. 그때 처음 탱크를 구경했는데 사지에 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때부터 시작된 허신부의 한국 생활은 '한국 인권 운동'의 주소와 궤를 같이한다.지난 75년 당시 영국 본부에 등록은 됐으나 회원조차 없던 엠네스티 한국 지부에 가입한뒤 국내양심수 명단을 작성, 국제 사회에 여론화시킨 것을 시작으로 경북 구미에서 회원을 모아 처음으로 그룹 활동을 펼쳤다.
이후에도 허신부는 서슬퍼렀던 5공 시절 '국가보안법'과 '고문' 철폐를 주장하고 86년에는 강제폐쇄됐던 엠네스티 한국지부를 대구에 다시 설립하는등 인권 운동의 심장부에 줄곳 서 있었다.물론 보이지 않는 공포에 밤잠을 설치고 동료 회원이 구속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초창기 엠네스티 활동은 거의 대구.경북 지역에서 이뤄졌다"는 허신부는 "지역에서 엠네스티 활동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인권 운동이 한국 사회에 이정도 뿌리내리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회원이 20~30명에 지나지 않던 엠네스티 한국지부는 현재 회원수가 2천5백여명에 이른다. 또 인권선언일인 10일에는 서울 여의도 체조경기장에서 4천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인권콘서트'를 열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허신부는 "인권은 개인이나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공통의 기본 문제"라며 "어려운 시절 도움을 받았듯이 이제는 한국인들이 인권 유린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해 관심을 가질 시기"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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