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의 상징으로 불렸던 배우 고(故) 윤석화는 끝까지 "윤석화답게 살고 싶다"는 뜻을 지키며 항암 치료 대신 자연 치유를 선택했고, 신앙과 가족, 동료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삶의 존엄을 지켰다.
19일 연극계에 따르면, 윤석화는 이날 오전 9시 54분쯤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었다.
윤석화는 2022년 연극 '햄릿' 공연 이후 영국 출장지에서 갑자기 쓰러졌고, 급히 귀국한 뒤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20시간에 달하는 대수술 끝에 의식을 회복한 그는 "병원에서 삶을 연명하는 것은 나답지 않다"며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치유를 택했다.
"이렇게 병원에서 삶을 연명하는 것은 나답지 않다. 하루를 살아도 괜찮으니 윤석화답게 살다 윤석화답게 죽을 수 있게 도와 달라"는 그의 요청에 주치의도 깊이 공감했다고 한다.
윤석화는 실제로 쑥뜸, 산책, 건강식 등으로 회복을 이어갔고 한때 병세가 호전되기도 했지만 병마는 끝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같은 해 10월 채널A 인터뷰에서 그는 "조금 기가 막혔다. 웬만한 암도 아니고 뇌종양이라니 솔직히 웃음이 나왔다"고 담담히 말하기도 했다. 방사선 치료 후 몸무게가 36kg까지 줄었다.
그는 "병원에 있으면 새벽 5, 6시에 간호사들이 주사를 놓는다. 얼마나 아픈지 괴성으로 하루를 시작했다"며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이건 삶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일주일을 살아도 나답게 살고 싶다.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을 실컷 보고 싶었다"고 했다.
2023년 11월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에덴교회 유튜브에 간증 영상도 공개됐다. 뇌종양 수술을 하면서 마취 호스에 버티지 못한 앞니 네 개가 모두 빠진 모습이었다. 그는 "20시간 넘는 수술을 마치고 깨어났을 때는 누가 손을 잡아줘도 설 수가 없었다"며 "그때는 혼자 설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지 않았다"고 했다.
1956년 서울 출생인 윤석화는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해 '신의 아그네스', '햄릿',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 수많은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잡았다. 투병 중에도 무대에 대한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2023년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연극 '토카타'에 약 5분간 우정 출연해 관객들에게 마지막 무대 인사를 전했다. 이 공연은 그의 공식적인 마지막 활동으로 남았다.
윤석화는 연극을 넘어 뮤지컬,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약했다. '아가씨와 건달들', '명성황후', 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 등에 출연했으며, 연출과 제작에도 힘을 쏟았다. 2002년 건축가 정운규와 함께 연 소극장 '정미소'는 예술 실험의 공간으로 주목받았다. 직접 연출한 연극 '위트', '19 그리고 80'은 지금도 명작으로 회자된다.
또 1995년에는 들꽃컴퍼니를 설립해 애니메이션 '홍길동 95'를 제작했고,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 연출, '톱 해트' 제작에도 참여했다. '톱 해트'는 영국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수상하며 해외에서도 인정받았다.
윤석화는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 4회 수상, 동아연극상, 서울연극제상, 이해랑 연극상, 대통령 표창(2005), 대한민국문화예술상(2009) 등 화려한 수상 경력으로 예술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2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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