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지금, 그리고 여기

나에게 배당된 하루치의 사막을 기듯이 겨우 건너면서 헛것으로부터 상처받고 집으로 돌아와 손가락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 너댓 시간을 멍청히 허공을 쳐다보며 대책없이 누워있는데 문득 발랄한 친구로부터 전화, 통화내용중에 기억할 만한 것, -있잖아, 웃기는 비유 하나 들까?캄캄한 밤하늘에 뭔가 번쩍번쩍 빛나는게 있어서 바로 저거다 싶어 저건 나의 별!이라며 좋아라점찍었는데, 알고보니 그건 별이 아니라 인공위성이더군. (낄낄, 키득키득)

-헛것을 헛것인줄 모르고 그것에 사로잡혀 쫓아가는게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 아니겠냐? -그러나 깨닫고 나면 헛것과 진짜는 한몸이라는데, 난 아직 잘 모르겠다.

-뭐가 헛것이고 뭐가 진짠지 낸들 알겠냐.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지 뭐.

그렇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그러므로 모든 분별심을 버리고 그냥 그러려니 살면 된다. 그러나 그러려니 하며 살지 못하기 때문에 너와 나는 우리가 되지 못하고, 우리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삶은 노래와 춤이나 축제가 되지 못하고 서로에게서 상처받고 서로를 외면하고 서로를 밀어낸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도망갈 데라곤 아무데도 없다. 지금 여기에서 상처받았다면 지금 여기에서 그 치유책을 찾아보아야 한다.

마냥 상처를 방치해 둔다면 세월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될수 있다. 헛것이든 뭐든간에 자기앞의 생과 화해하며 함께 호흡하고 교감하고 웃으며 그 소중한 생과 한몸이 되는 것,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의 삶의 비참함을 받아들이고 진흙속의 연꽃을 피워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그것이 지금 여기로부터 아무데도 도망갈수 없는 우리의 몫이 아닐까.

생은 다른 시간,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바로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생은 언제나 새롭게 비어 있어 우리의 진실하고 생생한 흔적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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