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다닌 직장은 대학 졸업학기에 시험쳐서 들어간 재벌기업이다. 원서가 남아 있는 그룹이 그 그룹 뿐이었고, 원서를 쓸 때도 딱히 가고 싶은 그룹 내의 특정 회사도 없어서 내 전공분야를 뽑는 회사 중에서 알려지지 않은 회사 하나를 1지망 회사로 기입하고 원서를 제출했다. 떨어진다고도 생각지 않았지만 합격한다는 자신도 없고 합격하더라도 꼭 회사 생활을 해야할 것인가 하는 것도 마음을 정하지 않아서 약간은 장난기 있게 지망회사를 썼었다. 하지만 막상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면접까지 가게 되니 남들처럼 종합상사·건설·자동차 같은 인기있는 회사를 지망할 걸 하는 후회도 없지 않았다.
배치받고 보니 그 회사는 창사한지 7년된 회사이고, 전체 종업원은 6천명이 넘는 작지 않은 회사였는데 근무지는 서울 본사였다. 2백명 안되는 인원이 본사에서 근무했는데 분위기는 무척 개방적이었고, 쉽게 쓰는 '가족'이란 표현을 써도 괜찮을 정도로 좋았다. 업무에 따라서 신입사원이 본부장급 상무실에 결재를 받으러 들어갈 때도 있고, 그 서류에 잘못된 표현이나 오자가 있어도 질책하지 않고 일깨워 주는 그런 회사였다.
당시 상무 한 분은 지금 훨씬 크고 좋아진 그 회사 사장으로 계시는데 첫 눈 오는 날 미혼 남녀사원들을 나이 순으로 열명씩 불러내서 짝을 지워주면서 미팅자금도 나눠주고 오후 근무는 면제해 줄 때도 있었고, 기숙사 생활하는 총각사원들을 밤에 모아 칵테일에 대한 강의를 할 때도 있었다. 회사를 그만둔지 오래된 지금에도 그 분은 직함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주시고 하대한다.
이제 취업의 계절이 돌아왔다. 작년보다는 취업의 문이 다소 넓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좁은 문일테고, 많은 지방대학 출신자들에게는 더 좁게 느껴질 것이다. 직업과 직장 선택에 있어서 각자 중시하는 요소가 다르겠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회사, 얼마를 근무하더라도 오래 좋은 기억으로 남는 회사가 좋은 회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가기 전에 다 확인할 수는 없으니 행운도 따라야할 것이다.
대구방송 FM제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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