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구조조정 태풍이 불면서 숱한 인력이 자신의 일자리에서 물러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우리사회는 연령의 문제를 새삼 심각한 과제로 의식하게 됐다. 기존의 노령인구 증가추세에 이른바 '늙지도 젊지도 않은'새로운 퇴직 노인들이 유입됨으로써 노인세대의 사회적 성격이 크게 변모했고 경제위기에 따른 노인들의 생활난은 더욱 비참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직장내의 명퇴나 정리해고를 경쟁력향상이란 구조조정의 참뜻과는 달리 연령적 잣대로 결정하는 경우가 일반화됨으로써 직장공동체가 노소간의 생존 게임으로 삭막해졌다. 공공기관은 몇년생이상 나가느냐가 관심의 대상이고 기업에선 봉급을 많이 받는 나이많은 사람이 먼저 나가야한다는 이야기가 무성했다.
위기속의 노령문제
그런 가운데도 노령인 김대중 대통령의 정력적 집무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방북활동 등을 TV로 보는 노인들은 부러운 마음과 아울러 심한 무력감을 느끼기도할 것이다. 50대의 실직은 말할 것도 없고 60대에도 할 일이 없는 건강한 노인들은 자신의 무능을 원망해야할지 '젊은 노령'을 앞당기는 사회를 원망해야할지 당혹스럽기만하다. 65세이상의 인구점유비로 보아 선진국들은 이미 고령사회(14%이상)로 들어섰지만 우리는 이제 320만8천명으로 6.9%에 달해 고령화사회(7%이상)에 진입하고 있는 단계다. 이같은 증가속도로 가면 2021년에는 우리도 고령사회에 접어들 전망이다. 노인의 문제는 이미 단순한 복지차원의 문제가 아닌 국가의 성쇄를 좌우할 중심 세대의 역할이동(役割移動)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국부(國富)의 80%를 55세이상의 고령층이 쥐고 전체소비의 40%를 담당하는 영국은 벌써 고령인구가 그 사회의 중심이 됐고 장기불황의 늪에 빠진 일본은 50대이상의 '시니어 파워'를 주역으로 경제르네상스를 일으키려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기획청은 새 천년에는 소비능력과 집단적 파워, 삶의 지혜를 고루 갖춘 노인이 사회의 주역이 되는 '고령 신인류'를 미래세대의 중심으로 표방하고 있다. 미국도 기업의 정년제폐지를 법제화했고 서부 애리조나엔 사상 최초의 노인도시 선시티(Sun City)를 건설, 노인 이상향의 모델로 만들었다. 소장층(少壯層)이 점차 노인들에게 그 사회적 역할을 되돌려주고 있다. 경제활동가능인구의 4분의1을 점하고 전문성과 경험이 집적된 이들의 방치는 엄청난 국가적 손실임을 깨달은 사회가 선진국임을 실감케하는 것이다.
노령으로 역할이동
그러나 우리의 노인은 오늘의 경제적 성과를 가져오게한 주역이었지만 끼니를 걱정하고 병고와 외로움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는 딱한 처지가 대부분이다. 노인의 55.5%가 한달에 20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35%는 각종질환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는 일상생활이 곤란하다. 노인 7, 8명에 1명 꼴인 42만명이 끼니를 거르는 것으로 조사됐고 건강이 허락해도 취업희망자 10명중 고작 1명정도가 일자리를 구할 정도다. 경로연금 노인건강진단 경로우대 의료보호 정도의 정부 복지서비스가 고작이고 내년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된다해도 전체예산의 0.25%선인 노인복지예산이 제자리걸음을 하는한 희망이 없다. 또 81년만 해도 3세대가정이 69.1%나 됐지만 98년에는 26.4%로 격감해 노인들은 거의 모든 가정에서 '왕따'신세가 됐다.
가정과 사회의 왕따
10월2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노인의 해'에 맞이하는 '노인의 날'이다. 선진국 노인들이 현역으로서 사회의 주역임을 선언하고 그들의 경륜이 나라를 일류로 끌어간다는 자부심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사회도 새천년에는 노인들이 역사를 만드는 주인공 세대가 되게해야할 때를 맞은 것이다. 우리가 일류가 되기위해서도 노인의 경륜과 지혜를 더이상 소외지대에 방치해선 안된다. 그러기위해선 우리의 노인들도 정부의 시책을 그저 쳐다보지만 말고 내년 총선부터라도 노인의 뭉쳐진 힘을 정치세력화하고 노인 참여의 길을 능동적으로 열어야한다. '슬픈 노인'에서 벗어날 때 우리도 선진국이 될 것이다.
홍종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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