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이 퇴폐화 하고 있다.
지난 89년 등장한 노래방은 건전한 여가공간으로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를 잡았으나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언제부터인가 주부들까지 접대부로 나서며 술과 성(性)을 제공하는 탈선지대로 변질하고 있다.
3~5평 크기의 방 규모가 10평 이상으로 넓어지는가 하면 화려한 실내장식에 선정적인 영상이 비치면서 주문에 맞춰 맥주와 양주가 나온다. 룸살롱 등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노래방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영업 실태=지난 6일 밤 10시쯤 대구시 수성구 두산동 ㄷ노래방. 취재진의 요구에 20여분이 지나 30대로 보이는 여성 2명이 노래방에 들어섰다. 여성 김모(35)씨는 남편의 수입이 예전같지 않아 노래방에서 일하게 됐다며 "보통 7시부터 다음날 새벽 3, 4시까지 4, 5군데 이상의 노래방을 옮겨다니며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친정 어머니에게 맡기고 나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김씨와 함께 온 최모(33)씨는 3년전 이혼해 딸(7)과 함께 살고 있으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지난해 연말부터 노래방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
이들은 2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흥을 돋운 뒤 4만원씩 '팁'을 받고 자신들을 호출한 다른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다음날 새벽 2시쯤 동구 신천동 ㄱ노래방. 7개의 방에서 남녀가 한데 엉켜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탁자위에 맥주와 양주 잔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노래방입구에서 만난 여대생 김모(20)씨는 "마땅한 아르바이트가 없어 이 곳에서 하루 5, 6시간 일하고 있다"며 "짓궂은 손님도 있지만 원할때 일할 수 있고 일하는 시간에 비해 수입도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노래방 업주 이모(34)씨는 "일하러 온 주부가 손님과 있다 아들이 아프다는 전화를 받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일도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업주 오모(43)씨는 "생활정보지에 낸 종업원 모집 광고를 보고 찾아오는 여성보다 스스로 찾아와 전화번호를 남기고 손님이 있을 때 불러달라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겉도는 단속=지난 5월부터 노래방 관리업무가 경찰에서 구·군청으로 넘어가면서 집중단속을 벌인 결과, 대구지역 1천790개 노래방 가운데 탈·불법 영업으로 적발된 것은 지난 10월말까지 586건. 과태료 부과와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이 동원되고 있으나 탈·불법은 여전하다. 업주들은 '술과 여자'가 없으면 찾아오는 손님이 거의 없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단속을 겁내지 않는데다 행정기관의 단속인력이 부족하고 업소측의 법망 피하기도 교묘하기 때문. 접대부들이 손님과 일행이라며 '오리발'을 내미는 경우가 많아 신원확인 등의 방법을 통해 접대부임을 입증할 만한 조치를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동구청 담당직원은 "한번 점검을 한 업소를 다시 점검하기까지 두 달 정도 걸린다"며 "단속인원이 부족하고 사법경찰권이 없어 불법 여부를 규명하는데 많은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진단과 제언=시민·사회단체들은 노래방의 탈·불법 영업이 잘못된 향락문화와 건전한 생계수단을 갖기 힘든 여성들의 현실과 우리 사회의 실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여성들의 일자리 마련과 매매춘 근절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영순 대구여성회 부회장은 "노래방의 변태영업은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이 어렵기 때문에 노래방이나 매매춘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로 나타나는 부정적 현상"이라고 했다.
金敎榮·李宗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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