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주영 세상읽기-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

나의 어머니는 학교라곤 냄새조차 맡아보지 못한 판무식이었다. 한글을 겨우 깨우친 것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으니까. 삼십을 넘기고서야 그나마 눈 뜬 장님인 까막눈을 가까스로 모면한 셈이었다. 낮에는 계절을 막론하고 끊임없는 노동에 부대끼는 고된 생활이어서 잡기장을 들춰볼 엄두조차 낼 수 없었지만 밤이면, 천근의 무게로 내려 감기는 눈시울을 치뜨고 그을음이 오르는 호롱불 아래서 몽당연필에 침을 찍어 발라가며 혼자서 한글을 깨우치려고 애를 끓이던 안타까운 정진을 아직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진서도 아닌 언문조차 서툴게나마 구사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어머니를 감정이 격해졌을 땐, 들춰내 꼬집어서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곤 했었다. 그런 어머니가 팔십 평생을 넘기면서까지 끈질기게 그리고 기회가 있을때마다 내게 가르치고 있는 한마디 말씀이 있다. 그것은 지극히 온당한 한마디, 곧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오늘날까지도 기찻길로 나서자면 백리길을 찾아가야 하는 산간 오지에서 일생을 보내고 있고, 젊은 시절에 독학으로 익혔던 한글조차도 항용 써먹기 버릇하지 못했던 탓으로 까먹어 버리고만 그 노인이 나를 만나면, 으레 당부하시는 말씀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요즈음도 거짓말을 하려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고, 입가의 근육이 실룩거리고, 말을 더듬게 되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상대방에게 금방 탄로나고 만다. 때로는 거짓말을 삼가야 된다는 평소의 중압감 때문에 프라이버시에 해당되는 말도 남이 보기엔 서슴없이 발설해 버리곤 해서 받지 않아도 좋을 오해나 손해를 볼 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사적인 비밀에 해당된다는 그런 말을 털어놓고 보면, 당장은 오해나 손해를 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겠지만, 인생의 긴 여정에선 자존심을 지키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을 깨닫게될 때가 여러번이었다.

우리는 올해의 하반기를 모피 코트 한 벌로 야기된 거짓말의 잔치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젠장 이런 세상 살아서 어디에다 희망을 걸까, 할 정도의 상실감과 자괴감에 빠진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었다. 여자도 관련이 되었고, 남자도 관련이 되어있고, 전직 장관과 청와대의 전법무비서관도, 옷가게 주인도, 전직 장관의 부인도, 재벌의 부인과 남편도 이 모멸스런 사건과 깊숙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응당 밝혀져야 할 것들이 어쩐 셈인지 속시원하게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사건을 파헤칠수록 미궁으로 빠져들기만 하고 있는 주된 원인은, 거짓말과 또 거짓말, 거짓말 위에다 다시 거짓말을 덧씌워 두둔하고 또 다시 거짓말로 부풀려져서 사건의 중심축에 위치하고 있는 당사자들조차 사건의 처음과 끝이 어디에서부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실타래처럼 엉켜버렸고, 본말이 전도되어 가닥을 잡을 수 없게 되어버린 까닭이다.

처음부터 대수롭지 않게 여겨 툭 던진 한마디의 하찮은 거짓말이 나라의 국기까지 흔들어 버렸다는 뼈 아픈 교훈을 가슴에 아로새겨야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산간 오지에서 팔십평생을 보내고 있는 나의 어머니는 호랑이는 때때로 만나는 짐승이었으므로 무섭지 않았겠지만, 거짓말이야말로 무섭다는 것을 일찌감치 터득하신 모양이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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