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전국 각 고교에는 1학년 학부모들의 불만 전화가 빗발쳤다. 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폐지했느냐는 것이었다. 학교 관계자들은 과열입시를 방지한다는 교육부의 방침 때문에 시행하기 불가능하다는 설명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러자 이번에는 학원가가 붐비기 시작했다. 집에 일찍 돌아오는 자녀들을 그냥 두지 못하는 학부모들의 불안이 사교육비 증가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얼핏 학부모들의 과도한 교육열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부모들의 무책임이라는 더 심각한 문제를 찾을 수 있다. 가정이라는 공간 속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는, 교육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무슨 방법으로 공부를 시킬지 몰라 자녀와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두렵다"는 엄마도 있다. 보통의 학부모는 물론 남을 가르치는 교사, 교수들도 내 아들 내 딸이라면 자신감을 잃기는 마찬가지다. "아들이 고3이 되자 새벽과외를 시켜도 불안했다. 다른 부모가 하는 거라면 뭐든지 해주고 싶었다. 이유는 하나, 교수나 의사 같은 전문 직업인이 되기만 바라고 있었다. 자식이 정작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는 원서를 쓸 때까지도 몰랐다" 모교수는 불과 몇 해 전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세계에서 교육열 높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우리 학부모들이지만 정작 자녀를 집에 두고 직접 가르치거나 함께 공부하고 어울리는 데는 서툴기 짝이 없다. 이는 유아교육이다, 영재교육이다 소리높여 떠들면서도 막상 교육은 일찌감치부터 외부에 맡기는데서 비롯된다.
제대로 걸어다닐만 하면 피아노, 미술 등 학원에 보내기 시작하고 유치원,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하루 몇 군데씩 보낸다. 자가용으로 태워주고 간식이나 제때 대주면 부모 할 노릇은 다한다는 식이다. 그 많은 교육비를 대기 위해 용돈까지 아껴가며 뼈빠지게 일하면 되지 않느냐는 아버지들의 목소리도 크다. 먹고살기 바빠 학원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사람도 있다.
생후 30개월부터 혼자 책을 읽기 시작해 지금까지 2천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는 독서영재 최푸름(10)군. 그 뒤에는 부모의 애정어린 노력이 숨어있다. 푸름이 부모의 교육법 중 독특한 점은 푸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도록 유치원이나 학원에는 전혀 보내지 않고 독서와 대화만으로 가르쳤다는 것. 한달에 10만~15만원의 책값이 들었지만 이는 유치원이나 학원 보내는 비용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대신 부모가 틈나는대로 책에서 읽은 내용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도록 곳곳에 데리고 다닌다. '누군가가 천재인 것은 천재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천재로 자라났기 때문'이라는 말의 좋은 사례다.
물론 3~7세 정도의 자녀를 둔 부모들 가운데는 "그만큼은 못해도 함께 책을 읽고 학습지를 풀거나 놀아주는 시간이 적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시간은 급격히 줄어들고 만다.
한 주부는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있고 학원에 가도 있는데 공연히 비전문가인 부모가 나설 필요가 있나요. 직접 가르치기에는 내용이 쉽지 않기도 하고요"고 반문했다. 틀린 말도 아니지만 돌이켜볼 점은 부모의 자세다. 어느새 자녀교육의 방관자로 밀려나고 있는데도 스스로는 최선을 다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지난해 수행평가가 본격 실시되면서 초등학생부터 고교1학년생까지 숙제가 엄청나게 늘었다. 새벽까지 숙제를 하는 경우가 많자 급기야 부모들도 나섰다. "무슨 숙제를 이렇게 많이 내느냐"에서부터 "부모가 함께 해도 풀기 힘든 문제가 무슨 초등학생 숙제냐" "가족끼리 대화할 시간조차 없다"며 온갖 불만이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숙제를 돕는 방법. 자녀가 알든 모르든 빨리 끝내고 보자는 해치우기식이 대부분이다. 숙제를 내는 의도나 하는 과정의 중요성은 뒷전에 묻힌다.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 숙제 분량이 우리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다. 그런데도 이를 지켜보는 부모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다. 아무리 숙제가 많아도 자녀 스스로 과정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떻게든 혼자 마무리하도록 배려하는게 가장 큰 역할이다.
자녀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여름이나 겨울방학. 이때는 서로가 극히 조심해야 한다. 자칫 부모·자녀간 갈등이 커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함께 공부하고 놀이를 즐기는 법을 모르는데서 비롯된다.
지난해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이 선정한 '올해의 좋은 아버지상'을 받은 이순원(38)씨는 "상을 받는 것보다 아들과의 끈끈한 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욱 큰 기쁨"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씨는 공부하라는 말 대신 역사·사회분야에 흥미를 보이는 아들과 고궁이나 문화유적을 함께 찾아다녔다. 아들과 함께 산에 오르며 쓰레기를 줍거나 노인정을 찾아 하루를 보내는 등 모범이 되려 노력했다.
교육전문가들은 큰 실천보다는 부모들이 우선 가정을 바로 세우는데서 교육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내 자식이 잘못해도 남의 탓만 하는 부모가 있는 한 교육의 위기는 해결하기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대구고 안인욱교장은 "오늘날의 부모 가운데 자식에게 진정한 관심을 쏟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며 "교실 붕괴, 청소년 비행 등은 학교나 사회의 잘못도 있지만 문제의 근본은 가정교육이 무너진데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제부터라도 자녀의 공부와 놀이, 정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자녀의 입장에서 함께 하려는 노력을 해 줄 것"을 당부했다.
金在璥기자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