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백엽상

백엽상 안을 들여다 본 적이 있는가. 가급적이면 매미소리가 요란한 여름철이면 좋겠다. 방과 후 아이들은 모두 돌아가고, 조무래기 몇 명만 운동장 한 켠에서 땅따먹기 하고 있을 때 두어 발짝쯤 잔디를 밟고선 허리를 굽히고 눈을 치켜 뜨면서, 마치 어제엔 없던 것이 새로 들어서 무엇인가를 확인이라도 하듯 하릴없이 들여다 보다가 동그마니 걸려 있는 온도계가 무료한 자신을 거꾸로 쳐다보고 있다고 느낀 적은 없는가.

교외로 나가다 가끔 시골학교를 보게 되면 가슴이 아릴 때가 있다. 어릴 때와는 달리 눈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것 같은 나지막한 교사(校舍)와 그 둘레의 화단, 그리고 만화경 들여다 보듯이 눈을 박던 예의 그 백엽상을 보면 괜시리 눈이 묵직해지면서 새삼스런 감회를 느끼곤 한다. 책상 위에 줄을 그어 경계지어 놓고 다투던 내 짝 박○○, 언제나 누런 코를 상표처럼 달고 다니던 김○○. 이제는 윤곽조차 아물아물한 얼굴들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큰 솥 걸어놓고 고깃국 끓이던 운동회며 벌거숭이 임금님 노릇하던 학예회하며 급식하던 옥수수빵.... 달리 놀거리도 볼거리도 없는 시골, 그래서 오히려 모든 게 놀이감이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왜 이다지도 가슴이 저린지.

사람들은 누구나 때때로 과거여행을 하곤 한다. 힘겨운 성취를 하고 난 뒤거나 인생의 한 고비를 넘긴 뒤 까닭없이 허무해질 때면 더욱 더 그러하다. 그리고 그것은 아스라한 어린 시절일 경우가 많다. 텅 빈 것처럼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상실감 때문일까. 아니면 맑고 단순한 일이 드문 요즘 세태에서 그 시절 전설같은 이야기라도 떠올리게 되면 그나마 위안이 되어서일까.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농촌학교의 분교화와 폐교 소식을 들을 때면 산골짝 깡촌의 모교는 지금 학생 수가 얼마나 되는지, 혹 그 대상이 되지나 않았는지 걱정이다. 권오상.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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