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경렬 세상읽기

텔레비전을 켜 놓은 채 신문을 보다 어린아이가 내뱉는 듯한 "익스큐즈 미"라는 소리에 얼핏 눈길을 주니 광고의 한 장면이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불과 몇살 안 돼 보이는 꼬마 아이이고, 무대는 비행기 안. 그 아이의 "익스큐즈 미"라는 소리에 외국인 승무원이 다가서자, 그 아이가 영어로 무언가를 주문한다. 당돌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꼬마 아이는 한국의 젊은 부모들이 자기네 자식들에게 바라는 이상형이 아닐까. 이 광고는 어린시절부터 적어도 영어 하나만은 유창하게 잘 하기 바라는 한국의 젊은 부모들의 마음을 너무 잘 포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발한 발상의 광고에 어린 자식을 둔 모든 사람들은 눈과 귀가 솔깃해졌을 것이고, 말할 것도 없이 이 광고를 낸 회사는 쇄도하는 문의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그런데 이 광고를 보며 심기가 편하지 못했음은 왜일까. 무엇보다도 우리말을 제대로 깨우치기도 전에 영어를 강요받아야 하는 한국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측은지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꼬마 아이에게 당돌하게 승무원을 불러 세우도록 가르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라는 의문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한 나이의 아이라면 자신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엄마든 누구든 함께 여행하는 어른에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조용조용히 말하도록 가르쳐야 옳지 않을까. 어린아이에게 공공 장소에서 말과 행동을 절제하도록 가르치는 사회야말로 교양과 문화를 갖춘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어린이들에게 절제의 미덕을 가르치는 일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공공 장소에서 제 세상을 만난 듯 떠들어 대고 뛰어 다니는 자기 아이들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란 이제 어렵지 않다. 만일 그런 아이에게 주의를 주는 경우 여러분은 아마도 그 아이의 엄마든 아빠든 여러분들에게 던지는 도끼눈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자기 아이를 꾸짖었다는 이유만으로 학교에 찾아가 선생님께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도 이제 적지 않다고 한다.

무엇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이런 논리를 편다. 개성과 인격을 존중하는 서양 사회와 달리 한국 사회는 아이들을 너무 억압적으로 교육하기에, 어른이 된 한국인은 소극적이고 자기 의사 표현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되도록 아이들의 기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험으로는 서양사회가 우리 사회처럼 아이들의 기를 살리기에 열중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공공 장소에서 내가 보았던 서양 사회의 젊은 부모들은 예외없이 아이들에게 행동을 바르게 할 것을 타이르고 꾸짖었던 것이다.아이들의 기를 살리기 위해 내버려두면, 그 아이들은 틀림없이 버릇없는 아이로 자라고 결국에는 안하무인의 몰상식한 사람이 될 뿐이다. 이처럼 기를 살리는 일과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성장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이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문제의 텔레비전 광고는 바로 이 점을 간과하고 아이들의 기를 살리기에 열중하는 우리네 사회의 젊은 부모들의 심리에 은연중 편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텔레비전에서 다시 시선을 돌려 신문을 보니, 러시아의 미녀 공학도가 러시아에서 열린 한국에 관한 에세이 콘테스트에서 1등을 차지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그녀는'내가 아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라는 글에서 평민적인 흰색의 순결함과 귀족적인 옥색의 고귀함으로 구성된 한국문화는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아함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그녀는 부상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녀가 혹시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든 어느 자리에서든 아이들의 기 살리기에 열중하는 한국의 젊은 부모들을 보면 어떤 느낌을 가질까. 여전히 한국문화의 순결함과 고귀함을, 우아함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터무니없는 기 살리기에 기막혀 하지나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문학평론가·서울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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